그저께는 학교옥상에서 자고 어제는 자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 오전 내내 내리잤는데 그동안 여자친구가 걱정이 되서 전화를 많이 했었나보다. 자취하던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문고리가 고장나 아사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단다. 요샌 잊고 살지만 오래 전, 옥탑방에서 살 때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내가 이 방에서 죽으면 사람들은 날 찾을 수나 있을까?'
평소 잠적하기 좋아하고 집에서 꾸물거리는 시간이 많아서 평소처럼 아 이러다 다시 나타나겠지하고 여겨진, 나는 뉴스에서 한달에 한번씩 나오는 '단칸방에서 발견된 독거노인 변사체'가 되어 세상에 알려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옥탑방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실제로 보일러가 타는 연기에 질식사로 죽을 뻔한 경험도 있었고, (나중엔 아닌걸로 밝혀졌지만) 괴한의 습격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군대가기 전, 적응할 수 없는 학교 생활등으로 많은 생각들을 했었던 시절이었다. 요새는 누구나 자취생활을 한번쯤 한다. 언젠가부턴 당연한 삶이 된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자취생활을 한 지역은 고향의 대척점에 선 외지가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더욱 지나면 고향이 자꾸만 늘어난다. 누군가의 시에 그런 문장이 있었다.
'내가 살던 집 창문에서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보일 때' 제목은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무어라고 정의를 내려야할 지 잘 모르겠는데, 사람보다는 지역이나 환경에 '나'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있다. 그것들은 모두 별개의 것들이지만 모자이크 처럼 기워놓으면 온전한 '나'의 형태가 된다. 그것들에 묻어있는 '나'의 흔적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그 행위가 나를 나로 인식하게 한다. 찌질해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