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월 19

앎과 실천의 문제

오늘의 한국아동문학에서 작가와 평론가와의 관계

작가는 평론가들이 (문학이론가나 비평가, 연구가를 모두 묶어서 평론가로 말함) 자신보다 문학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하여 부러워하거나 움츠려들 필요는 없다. 문예에서는 창작이 먼저요, 평론가들은 독자들(작가들도 포함한)을 위해 작품을 연구 ․ 분석 ․ 비평해 보이는 일을 할 뿐이다.
작가가 없다면 그들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작가가 할 일은 평론가에게 뒤지지 않도록 문학사나 문학이론 연구에 골똘하기보다는, 폭넓은 독서를 통하여 세계에 대한 바른 인식과 사고의 지평을 확대하고, 창작의 원천인 체험을 넓혀 가면서 좋은 작품 쓰기에 열중하는 일이다.
아동문학평론가들이 아동문학사나 지나간 시대의 작가 작품에 대한 연구와 문학이론에 해박하다 해도 결코 작가를 앞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라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그들이 아니라 자신보다 우수한 작품을 쓰는 동료 작가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뒤바뀌어 평론가들이 작가를 자기 멋대로 요리할 수 있는 존재로 착각하고 설치는(?) 바람에 작가들이 그들의 위세에 눌려, 두려워해야 할 존재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작가 자신 때문이다. 작가들의 정신(작품)이 그들을 압도하면 설령 그들이 제 아무리 빼어난 이론이나 연구로 완전 무장하였다 하더라도 작가를 함부로 깔고 뭉개려 들지는 못할 것이다.
평론가들은 작가가 탄생시킨 작품을 통해서만이 자신들의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2차 라인 생산자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비평이라는 칼을 갖고 있다고 하여 작가를 함부로 위협할 수는 없다. 겁 많은 작가나 작가 그룹에 입문한지 얼마 안되는 신인 작가들이라면 위협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평론가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들이다. 이런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회심의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작가들을 웃고 울리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작가가 먼저다. 작가가 언제나 선두에 서고 평론가들은 작가의 뒤를 따라 다니며 작가가 노래하고 흥얼대는 이야기를 기록, 분석, 비평할 뿐이다. 막말로 말하면 작가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직무에 충실할 때 존재 가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유일한 무기인 비평이란 칼은 작가가 손으로 만든 물건을 통해서만 (자신들은 직접 물건을 못 만드는 존재다)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칼을 조심해야 한다. 칼에 베이면 크게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특히 정신이 멍청하거나 만든 물건이 날림으로 보일 땐 영락없이 그들의 먹이 감이 된다. 그런 먹이 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은 기세등등하여 자신들이 문학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려 든다. 그러나 빼어난 물건을 만나면 그 물건을 만든 이에게 침이 마르도록 온갖 찬사를 바쳐야하는 한 사람의 찬사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정말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빼어난 창작에 예리한 비평, 해박한 지식을 함께 갖춘 평론가들이다. 이런 이들을 세계문학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평론가를 자신의 아랫사람처럼 대수롭잖게 여기느냐 아니면 상전처럼 여기느냐는 오로지 작가에게 달려 있다. 현재 한국아동문단에서는 평론가가 작가의 상전 노릇을 하려 하고 있다. 이는 작가들 탓이다. 작가들이여, 좋은 작품을 써서 아동문학평론가들을 아랫사람처럼 부리자!
―내가 평론가라는 이들을 너무 비아냥거렸나! 나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를 두려워한다.

(99. 12. 31)


http://kosam43.egloos.com/1112205
권오삼 아동문학 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