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월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거울> 상영은 전 모스크바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 아카데미 물리연구소 내에서도 흥미로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만나보고파 하는 자는 많았지만 극곳수의 사람들만이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어떻게 다르코프스키가 그와같이 철학적으로 심오한 작품을, 영화적인 수법을 통해 완성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우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애호가는 한 영화 속에서 구성, 줄거리, 주인공 그리고 보통 "해피 앤드"를 기대하는 데 익숙해 있다. 따라서 영화 애호가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속에서도 그와 같은 요소를 찾게 되며 결국 대부분은 실망에 가득 차서 극장을 나서게 된다. 왜냐하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속에서는 이런 요소들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물론 배우 이노켄지 스모크투노프스키가 흉내내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예의 구체적인 인간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 자신에 관한,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관한 영화다. 너처럼 살아갈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일 뿐인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이 세상에 살고, 동시에 이 인간의 일부이기도 한, 이 세상의 일부를 이루는 자에 관한 영화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으로써 과거와 미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우리들은 가볍고 간단하게 감상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바하의 음악과 아르제니 타르코프스키의 시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 영화는 우리들이 별과 바다 또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듯이 그렇게 보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 영화 속에서 수학적 논리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수학적 논리도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인간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지는 않지 않는가?"

 "당신의 영화 <거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영화와 똑같았습니다. ... 한데 -  어떻게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까? 그때는 정말 그런 바람이 불었고, 그런 소나기가 왔었죠. ... '갈카, 고양이 내쫓아라' - 할머니가 소리치곤 했었죠. ... 방 안은 어두웠습니다. 석유등도 그때는 꺼졌었죠, 그리고 내 영혼은 어머니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 당신의 영화는 어린이의 의식이 깨어남을 얼마나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는지! 영화의 장면들은 정말 사실 그대로였습니다. ... 우리들은 정말 우리 어머니들의 얼굴들을 모릅니다. 얼마나 간단하고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입니까. 어두운 극장 안에서 당신의 재주로 비쳐지는 한 쪽의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영화 <거울>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관해서 저는 아직 단 한 글자도 써 보려 하지 안핬지만 이 영화로 저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 만일 두 명의 인간이 적어도 단 한 번만이라도 똑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은 항상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설혹 한 사람은 빙하시대에, 또 한 사람은 원자시대에 산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인간은 최소한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충동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할 것 입니다 - 자신의 충동이든 타인의 충동이든."

 "저는 제가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로 이루어진,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관객들의 모임의 이름으로 그리고 이 모임의 추천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우선 먼저 저는 당신의 재능에 감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 영화관에서 상영된 당신의 영화는 모조리 보는 사람들의 무리가, 영화 잡지 <소련의 영화>에 발표되는 통계 숫자보다 엄청나게 많다고 하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비록 제게는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친구나 아는 사람 가운데 아무도 그런 특수한 설문에 대한 답장을 써 보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영화관에는 모두들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자주 가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꼭 봅니다. 당신의 영화가 너무나 드물게 상영되는 것이 정말 유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영화나 책의 저자에게 한번도 제가 받은 인상을 적어 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 영화는 인간을 실어증의 저주로부터 구해 줍니다. 인간이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생각을, 불안과 교만한 생각들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는 한 영화 토론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리학자와 시인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작가는 감사를 받을 만하다. 이 토론에서 발언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나 자신에 관한 영화입니다."

 "저는 늙고 이미 정년퇴직을 한 라디오 기사입니다. 직업상 예술과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영화 예술에는 각별한 흥미가 있습니다. 당신의 영화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어른들의 감정세계를 마치 아이들의 감정세계인 양 꿰뚫어볼 수 있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기 위한 감각을 일깨워 주고, 이 세상의 언필칭 가치있는 것이 아닌, 진정한 가치를 보여 주고, 사건의 정곡을 찌르며, 영화 속 모든 세부적 장면도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하며, 많지 않은 표현 수단을 통해 철학적 일반성을 추출해 내고 ...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의 재능, 오로지 당신의 영화 예술이 갖고 있는 재능인 것입니다. ..."

 "일주일 동안 나는 당신의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단순히 영화만을 보려고 극장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 내가 동경하던 모든 것, 나를 흥분시키고 내게 역겨운 모든 것 -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마치 거울 속을 보듯 당신의 영화 속에서 보았습니다. 나를 짓누르는 것들, 나를 밝고 따뜻하게 해 주는 것들, 내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모든 것, 나를 파멸시키는 모든 것. 처음으로 한 영화가 내게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반복해서 당신의 영화를 본 이유였습니다 - 다시 말하자면 당신의 영화를 통해서 그리고 당신의 영화 속에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인간은 도대체 단어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인간은 자신의 일상적인 어휘 속에 몇 개의 단어를 사용합니까? 백, 이백, 삼백? 우리들은 우리들의 감정을 말(단어)로 표현합니다. 말로 슬픔, 즐거움 그리고 모든 내심의 상태를 표현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전혀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려 합니다.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무척 아름다운 말, 선명하면서도 표현력이 강한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말들이 그의 가슴에서 용솟음치는 감정의 절반 정도라도 표현해 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로미오의 숨을 멈추게 하고, 줄리엣으로 하여금 사랑, 오직 사랑에만 전념케 하는 이 감정을, 그의 말은 도대체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말 이외의 전혀 다른 언어도 있습니다. ... 감정과 영상을 통한 새로운 교감 형식이 그것입니다. 이같은 접촉은 분리적인 것을 극복하고 말의 한계를 능가합니다. 인간 의지, 감정, 감동들이 인간들 사이의 장애물, 이제껏 거울의 이쪽과 저쪽, 문의 이쪽 저쪽에 서 있던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줍니다. ... 스크린의 범위는 점점 넓어집니다. 우리는 눈앞에 이제까지는 가려져 있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새로운 현실이 전개됩니다. ... 이 모든 것은 이제 더 이상 오로지 소년 알렉세이를 통해서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미 스크린의 저쪽 편에 앉아 있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관계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죽음은 이제 없으며, 이제는 불멸성이 있을 뿐입니다. 시간은 이제 유일하고도 파기할 수 없는 요소인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 "조상들과 손자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테이블..." 물론 이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리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 영화에 상당히 감정적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경우에는 어떠했습니까? 답장을 기다립니다."

 영화를 찍을 수 없이 암울하고도 길었던 시기에 대부분 집필된 이 책과 더불어 (이 암울의 시간을 나는 내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강제적으로 깨뜨린다) 나는 결코 그 누구도 가르치려 하지 않으며, 나의 견해를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라고 하는 젊고 매력적인 예술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추구하면서, 나 자신을 정립하고자 하는 필요성에 의해서, 그리고 이 가능성에 관해 아직도 거의 연구된 바 없는 관계로 이 책은 집필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게 포괄적이고도 독립적인 자아를 찾기 위한 일종의 자기 추구인 셈이다. 왜냐하면 창조적인 작업은 어떤 절대적인 규격에도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은 세계를 수용하는 보편적 필요성, 그러니까 인간들을 생생할 현실과 연관시키는 저 수많은 상황 국면들이 중요한 것이다.


화요일, 1월 13

여행의 뼈

 주의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오래전부터,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저 아이들의 온갖 비참한 모습들 속에서도 한 가지 사실을 감지했을 것이다. 곧 해방된 프롤레타리아의 자신감이 아이들의 저 자유분방한 태도와 호응한다는 사실이다. 모스크바의 박물관을 관람할 때 무엇보다 놀랍고 아름다운 모습은 단체로, 때론 가이드 한 명을 둘러싸고, 아니면 혼자서 아이들과 노동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그곳을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다. 우리의 박물관에서라면 다른 방문객들에게 감히 드러내지 못할 아니 아예 박물관에 들어올 수도 없는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절망적인 의기소침함을 여기선 결코 찾아볼 수 없다. 모스크바 일기, p283

 이 구멍 많은 돌이 건축물이다. 마당, 아케이드, 그리고 계단실 안에 이것들은 스며들어 있다. 나폴리 사람들은 모든 것들 속에 새롭고 우연한 별자리의 극장이 될 여지를 보존한다. 명확한 특징은 회피되고, 의도적으로 고정된 상태도 없으며, '다른 것이 아닌 이것'만을 주장하는 형상도 없다. 나폴리, p165-166


 기술 문명의 발달은 지식을 대중화하고 사람들의 감각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지만, 경험과모방으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이전 시대의 방식을 빼앗아가버렸다. 벤야민은 그러한 상태를 "지성의 인간다운 사용법"을 잃어버린 상태로 이해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보편화되기 시작한 이성중심주의, 모든 것을 체계화하고 분류하고 목록화하는 것으로 인간과 사물, 자연과 세계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실제로 인간이 갖고 있던 하나의 능력인 "예견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결국 현실에 눈감게 만드는 "사회의 우둔함"으로까지 나아갔다.
 '예견'은 인간의 신체가 자연(혹은 우주)과 가까웠던 시절에 경험과 모방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던 인간들이 지닌 능력이었다. 사람들은 그 능력을 통해 "도취의 상태에서 우주를 경험"했다. 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새로운 신체'를 조직할 수 있도록 했다면, 벤야민은 그것을 통제하는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적 신체를 조직함으로써만 자본-권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벤야민의 시대에 그 공동체적 신체의 이름은 '프롤레타리아트'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프롤레타리아의 힘은 그 신체가 회복되어가는 과정의 척도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규율이 그 신체의 뼛속까지 스며들지 않는 한 그 어떤 평화주의적 숙고도 그 신체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일방통행로, p164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권용선




토요일, 12월 27

주르륵 꼬르륵



시간은 흐르지만 후대에 유의미하게 이어지는 것은 선별적이다. 알면 알수록 가치들은 진동한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기던 것들 조차 골통 속에 한 자리를 하려 주변을 떠돈다. 이른바 가치들의 군웅할거. 회자정리 거자필반. 단지 멋들어진 말 몇마디가 내게 그리고 세대에 위안과 마취를 주는가


수요일, 12월 17

수요일, 12월 3

힘을 더 내도 되는 이유


S : 요즘은 언제 가장 글이 잘 써지시나요? 작업 일정표에 따라 일하시나요?

M : 전문적인 작가가 되었을 때 겪은 가장 큰 문제는 제 일정표였습니다. 저널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밤에 일해야 하는 것을 뜻하지요. 직업적인 작가가 되었을 때 저는 마흔 살이었습니다. 제 일정은 아침 아홉 시에 시작되어 제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 두 시까지 계속됩니다. 저는 늘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아침에만 일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후에도 일을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오후에 한 일은 다음 날 아침 다시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 반까지 일하고 그 외에는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인터뷰나 다른 약속이나 그 밖에 생기는 일들을 처리하지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요. 저는 익숙한 환경에서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린 호텔 방에서 빌려 온 타자기로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되지요. 그렇지만 이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부과한 조건이 항상 더 어려운 이유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사람들은 영감이 일어나길 바라지요. 영감이란 말은 낭만주의자들이 엄청나게 써먹는 용어예요. 제 마르크스주의자 친구는 이 단어를 받아들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저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글을 쉽게 쓸 수 있고 일이 흐르듯 손쉽게 이루어지는 특별한 정신 상태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한 때에는 집에서만 글이 써진다는 등 온갖 변명은 사라지게 됩니다. 만일 적절한 주제를 찾고 이것을 다룰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갖게 되면 그런 영감의 순간과 정신 상태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첫 번째 단락입니다. 저는 첫 번째 단락을 쓰는 데 여러 달이 걸립니다. 일단 첫 단락을 마치면 나머지는 매우 쉽게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단락에서 저는 제 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대부분을 처리합니다. 여기서 주제와 스타일과 어조가 정해집니다. 최소한 저의 경우 첫 번째 단락은 제 책의 나머지 부분이 어떨지 보여주는 견본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보다 단편집을 쓰는 것이 더욱 어렵지요. 단편을 쓸 때마다 작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S : 영감의 근원으로서 꿈은 중요한가요?

M :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꿈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영감의 가장 큰 근원은 인생 자체이며 꿈은 인생이란 격류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글에서 진실한 것은 제가 꿈의 여러 가지 개념과 해석에 매우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꿈을 삶의 부분으로 보지만, 현실은 훨씬 풍요롭습니다. 하지만 제가 매우 빈한한 꿈만 꾸었는지도 모르지요.

S : 영감과 직관을 구별해주실 수 있나요?

M : 영감이란 작가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적절한 주제를 찾았을 때 일어납니다. 이것이 작품을 쓰는 것을 훨씬 쉽게 만들지요. 직관도 역시 소설 쓰기의 근본인데, 직관은 과학적 지식이나 어떤 다른 종류의 학문 없이도 실재를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어떤 특별한 특질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다른 무엇보다도 직관으로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직관은 힘들여 싸우지 않으면서 경험하는 방식입니다. 소설가에게 직관은 본질적입니다. 근본적으로 직관은 지성주의와 반대됩니다. 지성주의는, 실재하는 세계가 어떤 움직일 수 없는 이론으로 바뀐다는 의미에서 아마도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직관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네모난 구멍에 둥근 못을 박으려고 애쓰지 않거든요.

S :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론가인가요?

M : 맞습니다. 그 주요한 이유는 제가 그들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일화를 통해서 대부분의 것들을 설명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추상화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거든요. 그것이 바로 많은 비평가들이 제가 교양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인용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S : 비평가들이 당신을 유형화하거나 범주화한다고 생각하시나요

M : 비평가들은 제게 지성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작가란 이래야 한다는 이론을 갖고 있지요. 그들은 작가를 그들의 틀에 맞추려들고, 만일 작가가 그 틀에 맞지 않으면 그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요. 당신이 물어보셨으니 대답을 합니다만, 저는 정말로 비평가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년 동안 비평문을 전혀 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작가와 독자 사이의 중재자라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저는 항상 매우 분명하고 정밀한 작가가 되려고 노력했고, 비평가를 거치지 않고 독자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S : 번역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M : 주석을 붙이는 번역가를 제외하고는 무척 존경합니다. 주석을 붙이는 번역가들은 아마도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것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그런 번역가도 있으니까, 독자들은 그런 번역가를 참고 견뎌야만 하겠지요. 번역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대가도 아주 적은 편이지요. 훌륭한 번역은 다른 언어로 이루어지는 재창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레고리 라바사를 엄청 존경합니다. 제 책은 21개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라바사는 각주를 달기 위해 책의 어떤 부분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유일한 번역가입니다. 제 작품은 영어로 완전히 재창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쫓아 읽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영어 번역본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은, 번역가가 제 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회상하여 다시 썼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그런 번역가들을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지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입니다. 출판업자들은 그런 번역가들에게 불쌍할 정도로밖에 지불하지 않으며, 그들의 번역을 문학작품의 창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저도 에스파냐어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지만, 번역은 제 자신의 작품을 쓰는 것만큼이나 많은 일을 요구하거나, 충분한 밥벌이가 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S : 라틴아메리카 작가들 중에서 당신이 높이 평가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 있나요? 

M : 지금은 얼마쯤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부흥이 가져온 최고의 부작용의 하나는 출판업자들이 새로운 코르타사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번뜩이며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운 나쁘게도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대신 명성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툴루즈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 프랑스인 교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마르케스에 대해 너무 많이 쓰지 않기를 요구하는 편지를 자신에게 썼는데, 그 이유는 마르케스는 더 이상 비평이 필요하지 않지만 다른 작가들은 비평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지요. 제가 그들의 나이일 때 비평가들은 저에 대해 아무것도 써주지 않았고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에 대해서만 썼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비평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에 대한 글이 쓰여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제 문학 경력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 가지는, 제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이미 다섯 권의 책을 출판했는데도 인세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S : 어떤 작가가 너무 일찍 명성을 얻거나 성공하는 것이 그의 경력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나요?

M : 나이가 얼마든지 간에 명성이나 성공은 다 나쁩니다. 작가가 일종의 상품으로 바뀌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만이라도 제 책들이 모두 제 사후에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S : 당신이 좋아하는 작품 외에 요즘 무슨 작품을 읽으시나요?

M : 저는 가장 기괴한 것들을 읽습니다. 얼마 전에는 무하마드 알리의 회고록을 읽었습니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훌륭한 작품입니다만, 몇 년 전만 해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아마도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믿는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책 외에는 정말로 어떤 책도 읽지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회고록과 다큐를 읽었습니다. 비록 그것들이 조작된 다큐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반복해서 읽는 것의 이점은 책 어디든 펴서 좋아하는 부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문학’만을 읽는다는 성스러운 개념을 버렸습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읽을 것입니다. 또 최신 정보를 갖고 있으려고 애씁니다. 매주 전 세계의 진짜 중요한 잡지를 거의 다 읽습니다. 텔레타이프 기계로 뉴스를 읽는 습관이 생긴 뒤에는 언제나 뉴스를 보고 들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전 세계의 중대하고 중요한 신문 기사를 다 읽자마자 아내가 와서는 들어보지 못한 뉴스를 들려줍니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읽었냐고 물으면 미용실에 있는 잡지에서 읽었다고 그러더군요. 저는 패션 잡지와 온갖 잡다한 여성 잡지와 가십 잡지를 읽게 되었고 그 책들을 읽음으로써만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바쁩니다.

S : 작가에게 명성이 파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M : 주요한 이유는 명성이 개인적인 삶을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명성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지요. 명성은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을 계속 쓰기를 원하는 유명한 작가는 명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테니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 명성이라거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과 관련한 많은 일을 겪지 않도록, 제가 죽은 뒤에 제 책이 출판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제 경우에 명성과 관련한 유일한 이점은 명성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명성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문제는 하루 24시간 내내 유명하기 때문에, ‘자, 난 내일까지 유명하지 않을 테야.’라거나 단추를 누르면서 ‘난 지금 여기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S : 작가로서 오랫동안 품었던 야망이나 후회가 있으신가요?

M : 그 대답은 이미 제가 명성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과 똑같습니다. 노벨상 수상에 관심이 있는지 지난번에도 물으셨지요. 제게 노벨상은 절대적인 재앙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지에 대해서는 저도 관심을 가질만 하지만, 그 상을 받는다는 것은 끔찍할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은 명성이란 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유일하게 평생 동안 후회하는 일은 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S :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것이 있나요?

M : 저는 평생에 가장 훌륭한 책을 쓸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책이 될지 언제 그 책을 쓰게 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지금 한동안 그런 느낌이 있는데요. 이러한 느낌이 제 곁을 스쳐 지나갈 때면 그것을 포착할 수 있도록, 아주 조용히 기다리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중 마르케스와의 인터뷰 일부 발췌, 피터 H. 스톤,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