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0월 17

아씨바 할말을 잊었슴다...

 어릴 적에 엄마 손잡고 그렇게 자주 다녔던 구미 문화예술회관이 김수근의 작품이었다. 내가  70, 80년대 냄새나는 건축물(보통은 김수근의 목조건물인 체하는 노출콘크리트)에 자꾸 반응하는 이유가 이때문인가? 적당히 걸어다니던 시절에 뭘 알았겠느냐만은 어머니는 그때 내게 그런 기회를 많이 주셨었다. 어린이 뮤지컬같은 것의 표를 달랑거리며 들고 앉아있는 동안 어머니는 장을 보시는지 백화점을 들르시는지 어쨌든 나는 거기에 몇시간 동안 그 견고한 벽돌 건물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빛은 누랬다. 내가 붉은 벽돌에서 느끼는 이상한 감정은 군대 내무반이 처음이 아니었나보다. 이제와서 사진을 보며 새삼 느끼는 건데 굉장히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해몽의 순간...... .

유리궁전에서 아쉬운 것은 열효율이라던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 장소에 존재하고 시선을 빼앗아 오는 것만으로 기능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안온한 터가 있음을 알리고 발길을 빼앗아 오는 공간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동물으로든 인간으로든 웅크리고 있을 만한 터가 존재할 거라는 신뢰가 생기는 공간. 내가 10분만에 쌓아올린 생존용 움집터가 그런 면에서 수십층짜리 유리궁전보다 우월하다. 그곳에서는 나를 어둠 속에 숨길 수 있으며 공간 속에 나를 녹여낼 수 있다. 공간이 몸과 함께 기능할 때 좋은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