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2월 3

힘을 더 내도 되는 이유


S : 요즘은 언제 가장 글이 잘 써지시나요? 작업 일정표에 따라 일하시나요?

M : 전문적인 작가가 되었을 때 겪은 가장 큰 문제는 제 일정표였습니다. 저널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밤에 일해야 하는 것을 뜻하지요. 직업적인 작가가 되었을 때 저는 마흔 살이었습니다. 제 일정은 아침 아홉 시에 시작되어 제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 두 시까지 계속됩니다. 저는 늘 열심히 일해왔기 때문에 아침에만 일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후에도 일을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오후에 한 일은 다음 날 아침 다시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 반까지 일하고 그 외에는 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인터뷰나 다른 약속이나 그 밖에 생기는 일들을 처리하지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요. 저는 익숙한 환경에서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린 호텔 방에서 빌려 온 타자기로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되지요. 그렇지만 이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부과한 조건이 항상 더 어려운 이유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사람들은 영감이 일어나길 바라지요. 영감이란 말은 낭만주의자들이 엄청나게 써먹는 용어예요. 제 마르크스주의자 친구는 이 단어를 받아들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저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글을 쉽게 쓸 수 있고 일이 흐르듯 손쉽게 이루어지는 특별한 정신 상태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한 때에는 집에서만 글이 써진다는 등 온갖 변명은 사라지게 됩니다. 만일 적절한 주제를 찾고 이것을 다룰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갖게 되면 그런 영감의 순간과 정신 상태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첫 번째 단락입니다. 저는 첫 번째 단락을 쓰는 데 여러 달이 걸립니다. 일단 첫 단락을 마치면 나머지는 매우 쉽게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단락에서 저는 제 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대부분을 처리합니다. 여기서 주제와 스타일과 어조가 정해집니다. 최소한 저의 경우 첫 번째 단락은 제 책의 나머지 부분이 어떨지 보여주는 견본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보다 단편집을 쓰는 것이 더욱 어렵지요. 단편을 쓸 때마다 작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S : 영감의 근원으로서 꿈은 중요한가요?

M :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꿈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영감의 가장 큰 근원은 인생 자체이며 꿈은 인생이란 격류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글에서 진실한 것은 제가 꿈의 여러 가지 개념과 해석에 매우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꿈을 삶의 부분으로 보지만, 현실은 훨씬 풍요롭습니다. 하지만 제가 매우 빈한한 꿈만 꾸었는지도 모르지요.

S : 영감과 직관을 구별해주실 수 있나요?

M : 영감이란 작가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적절한 주제를 찾았을 때 일어납니다. 이것이 작품을 쓰는 것을 훨씬 쉽게 만들지요. 직관도 역시 소설 쓰기의 근본인데, 직관은 과학적 지식이나 어떤 다른 종류의 학문 없이도 실재를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어떤 특별한 특질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다른 무엇보다도 직관으로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직관은 힘들여 싸우지 않으면서 경험하는 방식입니다. 소설가에게 직관은 본질적입니다. 근본적으로 직관은 지성주의와 반대됩니다. 지성주의는, 실재하는 세계가 어떤 움직일 수 없는 이론으로 바뀐다는 의미에서 아마도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직관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네모난 구멍에 둥근 못을 박으려고 애쓰지 않거든요.

S :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론가인가요?

M : 맞습니다. 그 주요한 이유는 제가 그들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일화를 통해서 대부분의 것들을 설명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추상화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거든요. 그것이 바로 많은 비평가들이 제가 교양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인용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S : 비평가들이 당신을 유형화하거나 범주화한다고 생각하시나요

M : 비평가들은 제게 지성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작가란 이래야 한다는 이론을 갖고 있지요. 그들은 작가를 그들의 틀에 맞추려들고, 만일 작가가 그 틀에 맞지 않으면 그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요. 당신이 물어보셨으니 대답을 합니다만, 저는 정말로 비평가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년 동안 비평문을 전혀 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작가와 독자 사이의 중재자라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저는 항상 매우 분명하고 정밀한 작가가 되려고 노력했고, 비평가를 거치지 않고 독자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S : 번역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M : 주석을 붙이는 번역가를 제외하고는 무척 존경합니다. 주석을 붙이는 번역가들은 아마도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것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그런 번역가도 있으니까, 독자들은 그런 번역가를 참고 견뎌야만 하겠지요. 번역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대가도 아주 적은 편이지요. 훌륭한 번역은 다른 언어로 이루어지는 재창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레고리 라바사를 엄청 존경합니다. 제 책은 21개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라바사는 각주를 달기 위해 책의 어떤 부분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유일한 번역가입니다. 제 작품은 영어로 완전히 재창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쫓아 읽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영어 번역본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은, 번역가가 제 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회상하여 다시 썼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그런 번역가들을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지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입니다. 출판업자들은 그런 번역가들에게 불쌍할 정도로밖에 지불하지 않으며, 그들의 번역을 문학작품의 창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저도 에스파냐어로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지만, 번역은 제 자신의 작품을 쓰는 것만큼이나 많은 일을 요구하거나, 충분한 밥벌이가 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S : 라틴아메리카 작가들 중에서 당신이 높이 평가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 있나요? 

M : 지금은 얼마쯤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부흥이 가져온 최고의 부작용의 하나는 출판업자들이 새로운 코르타사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번뜩이며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운 나쁘게도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대신 명성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툴루즈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 프랑스인 교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마르케스에 대해 너무 많이 쓰지 않기를 요구하는 편지를 자신에게 썼는데, 그 이유는 마르케스는 더 이상 비평이 필요하지 않지만 다른 작가들은 비평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지요. 제가 그들의 나이일 때 비평가들은 저에 대해 아무것도 써주지 않았고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에 대해서만 썼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비평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에 대한 글이 쓰여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제 문학 경력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 가지는, 제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이미 다섯 권의 책을 출판했는데도 인세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S : 어떤 작가가 너무 일찍 명성을 얻거나 성공하는 것이 그의 경력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나요?

M : 나이가 얼마든지 간에 명성이나 성공은 다 나쁩니다. 작가가 일종의 상품으로 바뀌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만이라도 제 책들이 모두 제 사후에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S : 당신이 좋아하는 작품 외에 요즘 무슨 작품을 읽으시나요?

M : 저는 가장 기괴한 것들을 읽습니다. 얼마 전에는 무하마드 알리의 회고록을 읽었습니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훌륭한 작품입니다만, 몇 년 전만 해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아마도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믿는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책 외에는 정말로 어떤 책도 읽지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회고록과 다큐를 읽었습니다. 비록 그것들이 조작된 다큐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반복해서 읽는 것의 이점은 책 어디든 펴서 좋아하는 부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문학’만을 읽는다는 성스러운 개념을 버렸습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읽을 것입니다. 또 최신 정보를 갖고 있으려고 애씁니다. 매주 전 세계의 진짜 중요한 잡지를 거의 다 읽습니다. 텔레타이프 기계로 뉴스를 읽는 습관이 생긴 뒤에는 언제나 뉴스를 보고 들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전 세계의 중대하고 중요한 신문 기사를 다 읽자마자 아내가 와서는 들어보지 못한 뉴스를 들려줍니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읽었냐고 물으면 미용실에 있는 잡지에서 읽었다고 그러더군요. 저는 패션 잡지와 온갖 잡다한 여성 잡지와 가십 잡지를 읽게 되었고 그 책들을 읽음으로써만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바쁩니다.

S : 작가에게 명성이 파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M : 주요한 이유는 명성이 개인적인 삶을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명성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지요. 명성은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을 계속 쓰기를 원하는 유명한 작가는 명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테니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 명성이라거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과 관련한 많은 일을 겪지 않도록, 제가 죽은 뒤에 제 책이 출판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제 경우에 명성과 관련한 유일한 이점은 명성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명성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문제는 하루 24시간 내내 유명하기 때문에, ‘자, 난 내일까지 유명하지 않을 테야.’라거나 단추를 누르면서 ‘난 지금 여기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S : 작가로서 오랫동안 품었던 야망이나 후회가 있으신가요?

M : 그 대답은 이미 제가 명성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과 똑같습니다. 노벨상 수상에 관심이 있는지 지난번에도 물으셨지요. 제게 노벨상은 절대적인 재앙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노벨상을 받을 만한지에 대해서는 저도 관심을 가질만 하지만, 그 상을 받는다는 것은 끔찍할 것입니다. 노벨상 수상은 명성이란 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유일하게 평생 동안 후회하는 일은 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S :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것이 있나요?

M : 저는 평생에 가장 훌륭한 책을 쓸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책이 될지 언제 그 책을 쓰게 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지금 한동안 그런 느낌이 있는데요. 이러한 느낌이 제 곁을 스쳐 지나갈 때면 그것을 포착할 수 있도록, 아주 조용히 기다리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중 마르케스와의 인터뷰 일부 발췌, 피터 H. 스톤,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