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8월 4

진짜 앞에서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작품으로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꼽고,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모네의 수련을 꼽는다고. 지나치듯이 아아 그럴수도 있겠거니 하지만. 실제로 고흐의 그것을 본 입장에서 개소리에 가까웠다. 작년 한가람 미술관에서 본 그 어두운 강에 비치는 불빛은 '진짜'였다.

부푼 기대를 안고 파리에서의 첫 미술관 오르셰로 향했다. 내가 본 그 '진짜'를 다시 확인해보기 위해서. 닥터 후에서 본 그 고흐관의 3배는 될 것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고흐의 그림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 그 어느 쪽에 위치해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소 밝은 장내 조명 탓이었을까. 아니면 모나리자 앞 처럼 와글거리는 사람들 탓인가. 마치 고흐와 모나리자는 고깃집의 막창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불러앉히는 것은 막창이지만, 밤새 앉아 씹으며 즐기는 것은 돼지껍데기 내지는 여타 특수부위를 구워먹게된다. 굽는데 오래 걸려  딱 모자랄 때 시키면 리듬이 깨질 뿐이 아니라, 기름져서 계속 먹기 힘든데 이유가 있다.

눈 앞의 자화상은 자기가 진짜라고 말하고있지 않았다. 단지 주위의 다른 손님들이 '이 고기는 진짜야' 혹은 '이 집은 맛집이야'라고 말해줄 뿐이었다. 나는 고흐를 뒤로 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모나리자는 이 것을 겪은 후에 일이라 차라리 배경의 건물들 조차 잘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웅성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즐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예술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예술품이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는 가에 대해서는 퐁피두의 리히터가 정확히 꼬집었더라. 'I`m still very sure that painting is one of the most basic human capacities, like dancing and singing, that make sense, that stay with us, as something human. Its not that I`m always thinking about how to make something timeless, it`s more a desire to maintain a certain artistic quality that moves us, that goes beyond what we are, and that is, in that sense, timeless.' 구체적으로는 예술보다는 회화를 향한 말이지만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예술의 가치를 대지않고 단순한 시각으로 보았을 때, 그 수많은 인파들은 롤러코스터타이쿤의 줄과 다를 바 없었다. 이곳의 작품들은 그렇게 거대하게 소비되고있었다. 루브르는 마치 거대한 백화점 같았다.


 이틀 후 나는 튈르리 공원을 가로질렀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터넷 출처의 통계 결과는 내게 오랑주리 미술관의 이미지를 가늠케 했다. 몇가지 이유로 약간은 뒤숭숭한 기분으로 입장하게되었는데, 이내 그것은 가라앉았다.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앉게 되었다. 눈 앞의 연못은 새벽에서 낮이 되었으며, 일몰이 왔다가, 저녁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싸이클이 무작위로 반복되었다. 바닥에서 보니 시야가 확장되어 그것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일전에 천장에 설치된 어떤 막이 이걸을 노린 계획적인 디자인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알게 모르게 정치적이지도 사상적이지도 않은 메시지가 없는 그림을 괄시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도 유효하다. 그림을 마주하면 다 보지도않고 의미를 분석하려하니... 하지만 이것은 진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로스코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이런 것일까? 바닥에 앉아있는 동안 연못의 날은 몇번이나 바뀌었다. 해가 진 연못의 정취는 대단했다. 몇번이나 일어날까 고민을 했지만 몇 날이 지나고서야 일어났었다. 이것은 단지 순수한 자연정취의 모사밖에 되질않는다.그 어떤 멋들어진 의미나 사색의 발효를 통한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가르치지도 않고 우리에게 지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멍청하게 앉아서 즐길 수가 있었다. 예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지않을까 싶다. 물론 관람장의 분위기와 감상환경도 큰 부분이다.


+ 오랑주리 지하에 세잔과 피카소 그림이 몇작 있는데 꽤 흥미롭다. 피카소의 탬버린을 든 여인은 놀라운 구성을 가진 것 같다. 스스로가 그런 것을 판단할 위치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눈이 탁 뜨이는 그림인 것에 틀림없었다. 도록을 뒤적거려봤는데, 인쇄로는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다. 또 이름이 잘 기억나지않는데 독일표현주의처럼 휘갈겨놓은 작가가 괜찮았다. 다시 한번 가봐야지

+ 루브르에서도 리히터의 전시가 있었는데, 이건 단지 드로잉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이만큼의 영향력을 지닌 작가가 우리나라에선 왜 이렇게 언급이 안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예전에 아무생각없이 좋아서 저장해놓은 그림이 리히터것인 것을 알고 깜놀)

+ 여긴 맥까페 에스프레소도 맛있다. 국내에서 먹으면 한약만큼 쓰고 신데, 여긴 에스프레소가 진한 아메리카노랑 별반 차이가 없다. 어디서 듣기로는 까페라떼 만들 때 커피향을 남기기위해 일부러 태울 정도로 로스팅을 하기때문에 그렇다던데, 그 진위여부는 알 바가 없다. 그래서 카페라떼가 실은 굉장히 향이 옅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