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체류 10일째. 지하철에서 문득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 헤드폰을 많이들 낀다. 이어폰은 왠만해선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나 자주 보이는 것이 마샬 메이져다. 간지나는 형들은 다 저걸 착용하고있다. 우리나라에선 이상한 하이파이전염병이 돌아서 대차게 까이는 것 같은데 여기선 it stuff. 얼마나 다들 헤드폰을 애용하나면, 자전거에 올라 타 있을 때 조차 헤드폰을 끼고 페달을 밟는다. 물론 이 곳의 교통상황이 한국보다는 안전해보이긴 하다. 도로가 좁고 오래된 탓에 속도 내기가 힘들다. 여기가 구시가지라서 그런가? 내일은 외곽으로 가봐야겠다. 도로를 질주하며 딥퍼플의 highway star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2. 젊은 부랑자가 많다. 부랑자를 어찌 남녀노소 구분할 수 있겠냐마는 간혹 2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서 무슨 글씨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내가 궁금해하자 여자친구는 '나는 배고파요'라는 뜻이라고 귀뜸해줬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베낭여행객정도로 밖에 보이지않았다. 눈은 다른 부랑자들처럼 이마트의 동태와 다를 바 없었다.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내몰게 한 것인지
3. 지상에는 백인이 많고 지하에는 흑인이 많다. 조금은 위험한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관광객을 포함한 많은 흰 사람들이 박물관들과 함께 따뜻한 햇빛을 받는다. 지하는 오줌냄새와 쓰레기, 쥐들이 혼재해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존재한다. 검은 사람, 아랍계, 중국계 이민자, 한국관광객. 어두운 채도를 만드는 것은 단지 그들의 피부색깔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부유한 백인관광객들은 투어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일까? 그러고보면 지하철에 타는 백인 관광객은 동유럽사람들의 외모에 가까운 것 같다. 지상에서 보이는 핫시크 피플들이 메트로에서는 잘 보이지않는다. 아니 버스를 타고 다니는 걸까? 아직 지상에서 다른 교통수단(잘생긴 젊은 백형이 끄는 자전거수레, 버스, 택시, 마차...)들을 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땅 위는 희고, 땅 아래는 검다는 것이다. 실로 당연한 명암의 진리이다!
4. 황인종이 아닌 다른 인종의 체형은 실로 대단하다. 우월하다는 표현은 진부한데 이것말고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아름답다는 말은 정체성이 소멸된 표현같기도 하고. '조형적'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작은 머리와 길쭉길쭉한 팔 다리는 무엇을 걸치고있는가를 떠나서 보기에 시원스럽고 만족감을 준다. 이것은 흔히 말해지는 문화사대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조상들이 이루어놓은 문화에 단지 '희게' 태어나서 조형적이고 아름다워보이는 것에 편승한 것으로 비쳐지는 이 작금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체는 정말 적절하다. 사실 더 멋진 것은 흑형이다. 건강미나 육체미라는 통념때문인지 클래식하게 차려입은 흑형은 조금은 컬트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여지없이 쿨하다. 마치 어두운 정장과 구두사이로 비치는 원색의 양말과도 같다. 있어서는 안될 색상이 튀어나오는 느낌. 이렇게 쓰니 아주 흑백예찬을 한 것 같다... 사실은 zara바지를 접지않고 입은 내 모습에서 흐르는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 맞다.
5. 이 곳은 한 때 유럽 뿐 아니라, 세계 예술문화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단지 관광지로밖에 보이지않는다. (하지만 서적 및 도록의 위용은 상당하다. 서점을 사자. 서점을!) 세계 몇대 도시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 그것을 느낄 수 있는가. 현지인을 구분하기가 쉽지않은데 관광객이 반보다 좀 더 되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호스텔이나 민박이 있는 곳이 아니고 레알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주거단지쪽이라 객관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내 눈은 항상 거짓말쟁이이다! 거짓말쟁이는 이곳이 관광객이 다녀가는 찌꺼기들로 움직이는 도시라고 말한다. 그 실체가 좀처럼 보이지않는 도시. 보이지 않는 도시.
6. 마트에 파는 즉석 식품들이 굉장히 맛있다. 음식국의 위엄ㄷㄷ... 진열된 파스타나 샐러드 아무거나 사먹어도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호불호가 좀 갈릴 만한 것도 있겠으나 나는 음식을 잘 가리지않으니
7. 음식이야기를 하니 배가 고프다. 일단 밥을 좀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