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2월 11

우유에서 치즈로

종종 사람의 표정에서 거북스러움을 느낀다. 얼굴은 너무 솔직해서 섬세한 감정선 하나 하나 다 드러내버리고 만다. 뜩히나 나처럼 평소에 얼굴근육의 모든 긴장을 놓고있는 사람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타인들의 표정에 예민하다. (덕분에 덜 친한 사람과의 대화는 서로에게 불편함을 준다.) 최근 7번방의 기적에서 나온 우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화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졌었는데, 그 원인이 뭔지는 몰랐다. 확실한 것은 그 아이가 굉장히 싫었었다. (왜 날 쳐다보면서 우니? 엄마찾아가.) 촬영의 탓도 있겠지. 레미제라블의 얼굴줌도 영 편치못했으니까.. 방금 바스티앙 비베스의 블로그를 훑다가 그의 그림에서 얼굴이나 표정이 거의 없는 것을 알았다. 파리 아나이스의 집에서 우연히 본 '염소의 맛'은 어쩌면 가장 외부타협적인, 혹은 가장 솔직한 것일테지만. 그래서인지 '폴리나' 후반부 보진스키의 얼굴이 변하는 부분이 굉장히 소름끼쳤다. 내게서 증발해버렸다고 생각했던 잉크가 다른 형태로 변해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이제는 까닭없이 현재의 나에 대해 연민을 느끼거나,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는 날은 줄어들겠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조금 더 정확히 알았으니까



+그러면서 나는 사람의 얼굴들을 그린다. 가장 풍부하다. 과하면서도. 형태를 무너뜨리고 해체시키는 이유가 거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