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라도 필름에 기록을 하는 것은 그것이 rage against the digital인 이유도 있겠지만, 다분히 회화적이기 때문이다. 실제와는 분명히 다르다. 내가 그 순간을 가져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잉크로 그리고 물을 발라버리듯, 의외성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환경이 갖추어진다면 현상하는 과정에서 장난을 치고 싶었다. 저번학기에 만레이를 찾아보면서 감탄했던 것이 그 이유였던 것같다. 내가 원하는 '객관적인 거리두는 척하기'는 디지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방법은 너무 흔해보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저번학기 작업중에 '나랑상관없는사람들'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정도 접점을 찾은 것 같기도하고... tv에서 최영걸 작가가 나와서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있던 '내가 하는 예술'에 대해 혼란스러워졌다. 최근 어떤 영상에서 윤동천 선생님은 "지금, 여기, 우리가"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하면서도 남들이 귀기울일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되는 방법. 선생님은 갖고계신걸까? 사실 난 아직 잘모르겠다. 예술과 가치 시간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그 작가의 유명함에 대한 거부감으로 작가가 이룬 예술적 가치까지 무시하진말라" 자세히 기억이 안나는데 대충 뉘앙스가 저랬던 것 같다. 사실 항상 알고있으면서 실천이 안되는 것이다. 내가 예전 것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 또한 저것에 위배되는 것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눈에 띄어야하고 동시대성(1이게 컨템포러리인가? 2 시대정신이라고 적고싶은데 다른게 생각날까봐.)이 존재해야 우리가 수긍할 수 있을테지. 지금 이시대를 배타적으로 생각할 순 없다. 내스스로 따로 떨어져 망망대해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세상은 좁아졌으니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제 재홍이가 말한대로, 우리는 아무 필터없이 유명세를 통한 경외를 수반하게 된다. 그만큼 그가 갖는 가치이외에 색깔과 성격이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서도호라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 서도호'라는 이름은 저 와는 반대로 따로, 자의적으로, 생존해나가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율전공 학생이 가다머(물고기이름인줄알았다. 가담어? 십발)얘기를 하며 꺼냈던 자급자족설인데, 실제로 가다머랑 관련있는 지는 잘모르겠고 괜찮은 이론이다. 축구판과도 비슷하다. 내가 경기는 안보더라도 축구뉴스나 커뮤니티에서 여론을 접하는 것의 이유가 있다. 뭐랄까 세상의 축소판인 것이다. 뭐라고 쓰다가 자꾸 지우게 되는 이상황에 레알마드리드얘길할지 psg얘길할지 고민된다. 어찌됐건 스타의 콜렉팅은 스쿼드질 향상에 이어 컵을 들고 수익 증대효과를 노리는 수순을 생각하는 것 외에, 팀의 정체성을 위한 발버둥일 수 도있다. 의지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하나 자그마한 요소 요소에. 단지 그것은 먼지처럼 존재할 뿐인데, 우리는 그 작은 먼지에 기대고 그 주위에 호를 파고 요새를 지어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먼지를 불어 날리지 못하도록. 우리는 그 먼지가 내 obey 파란색후드티에서 나온 파란 실터럭인것을 이미 정확하게 알고있지만, 우리는 그 먼지에 대한 담론을 하며 왜 여기와있는가? 이 obey먼지를 통한 현대 신자유주의 비판까지 할 수 있게되었다. 무엇이든 '문제'로 만들 수 있고, 그 무엇도 '무시'될 수 있다. 우리 아니 나는 그런세상에 와있는 것 같다. 정말 무엇이든 문제가 된다. 가끔은 귀찮고 같잖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