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4월 24

한파속 폐지 수집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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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건
돈 되는 종이를
부활의 초입까지 나르는 일은
늙은이들의 몫이 되었다

언덕을 오르던 정오
말보로 상자는 납작해진 주둥이로
브라질 숲에서 왔노라 자랑을 했었다
진작에 고향을 잊은 노인은
의심스런 저울 위에 폐지를 올린 다음
무거운 시선 몇그램을 보태본다
그래봐야 영락없는 푼돈이지만
당분간의 목숨은
그럭저럭 붙은 셈이다

장차 자신의 장례비를
외투에 넣고 돌아서서는
이것도 노후랍시고, 하는 푸념 대신
그깟 외로움 하나 견디지 못한
아들놈의 죽음을 나무랐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어째서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가 하고





컨테이너에 살던 40대 숨진 지 1주일 만에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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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눈 내리던 그 밤에
문밖에 고라니 한 마리 지나갔고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갔고
다리 저는 구면(舊面)의 개는

얼어붙은 문틈에 더운 오줌을 뿌리고 갔다 
반가운 흔적은 눈에 덮여 사라졌고
검침원조차 찾지 않는 이곳을
눈인사나 주고받던 마을 촌로만 밤마다 걱정하셨나 보다
 
신고받고 달려오는 와중에
두 손 빌었을 순경은
짐작했을 것이다
컨테이너에 실린 그대로
죽었던 봄꽃이 어김없이 되살아 오곤 하는
그런 곳 아닌 곳으로
한 발 먼저 떠나갔을 줄





고통에 절규하는 새끼곰을 죽이고 자살한 어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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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가슴팍에
반달을 물려준 것이
어미의 죄다
숲에서 포획된
내 아버지 방심이 죄다

죽기 전 아버지는
산딸기를 그리워했다
잘 익은 다래를 그리워했다
이제 그만 고통을 끝낼 시간
아 , 깊은 산 고목 틈에 출렁일
아까시 꿀





근육 굳어지는 희귀병 ‘20년째 침대생활’ 33세 김천수 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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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파헤치듯
무례하게 비집고 들어온
아침 볕에 놀라지 말라
바짝 달구어진 날 선 광선이
부검하듯 배를 갈라도
침착해야 한다

굳었던 몸 거짓말처럼 풀어지거든
지체 없이 베란다로 나가
어깨 빠질만큼 기지개를 켜라
소리나게 관절 풀고
무릎 탁, 치면
눈 깜짝할 새
한 점이 되도록
하늘 높이 솟구칠 것이다

시공의 주인은 오직 당신뿐이니
느긋하게 두어달
가고 싶었던 구석구석
원 없이

아침식사 먹이시려는
어머니 성화에 깨더라도
결코 서운하지 않을
생생한 꿈이었기를





90대 할머니, 키스 왜 안해줘 '총기 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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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 뜬 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리라





도축 직전의 개·돼지 “제발 기절하게 해주세요”

[댓글]
칼에 베이고도
더는 딱지 지지 않는
생살 몇 덩이가
치지직
불판 위에서 탔다

이모님과 유통업자는
이문을 남겼고
도축업자와 옛 주인도
이문을 남겼다 

우리 또한
삶의 노고에 대한
얼마간의 보상을
(엉뚱하게도)
너의 살점에 청구하기로 했다

회식의 취지대로
웃고 떠들며
단합과 영양을 보충하다가
문득 너도
도축장으로 실려가던 그저께
고속도로 트럭 밖의
생경한 외계 풍경을
기왕에 소풍 삼아 즐겼기를 바랐으나
사실 우리는 그런 식의 소풍을 떠나지 않는다

미안하다만
우리는 돈을 치렀고
이문을 남겼고
오롯이 너만 당했다





“남는 밥좀 주오” 글 남기고무명 영화작가 쓸쓸한 죽음

[댓글]
공복의 속쓰림에 
밤새 지새웠을
너의 새벽이 눈에 선하다
깜박거리며 점멸하는 목숨을 느끼며
깡마른 손으로 썼을
가장 힘들었을 대사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너를 알았다면
한창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
뜨거운 쌀밥 나누었을텐데
끝내 너의 삶
해피엔딩은 아니었나보다
부디 에필로그는
시네마 천국에서
웃는 얼굴로
천천히 페이드 아웃 되기를





[사진]노동자의 어머니 영원히 잠들다

[댓글]

<마중>

온통 눈밭일 세상
마중 나온 스물 세 살 사내가
길눈 어두운 어머니를 위해 맨발로 눈길을 녹입니다
희미한 석유 냄새에
니 태일이 아니가,
하고 이름 부르시는데도
근사한 미소로 맞이하고픈
그는 돌아서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못 들은 척 시린 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인사를 해야 한다면
어머니, 잘 오시었다고 말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