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전까지 그림만을 그려왔다. 다른 매체에 대한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그리는 행위를 통해 충분히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겨우내 그간의 드로잉들과 페인팅들을 보며 무엇이 내게 중요했던가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 그림을 그려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 보다는 그리고 있는 그 상황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텍스트가 빼곡히 적혀있는 책을 찢어 물감을 바르거나 잘 보이지도 않는 밤의 수풀을 그 자리에서 그린다거나 하는
것들은 내게 있어 결핍된 무언가를 찾으려는 발버둥이었던 것 같다. 다음 작업은 몸을 사용하는 구체적인
행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삶에 필수불가결한 것들을 떠올렸다. 먹고 자고 싸는 것처럼
행위의 목적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그런 것들에서 찾아보려 했다. 나는 종종 짧은
호흡으로 어떤 행위를 반복할 때 멍한 상태를 겪게 된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무아지경이라 본다. 그러한 경험 중에는 일상에 들러붙어있는 많은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어떤 것에는 현실과의 단절이 존재하는 한편, 강렬한
의지도 함께 한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한시도 조용히 있지 못하는 치매노인을 보았다. 그는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분명히 한국말이었으나 맥락은 없었다. 심기가 불편해지면 그의 목소리는 더욱 격렬해졌다. 그는 그 나름대로
무언가 느끼는 바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 행위가 내게 비정상적으로 비쳤던 것은 그의 언어 체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수불가결하지만 제대로 된 목적이나 의미는 없는 그런 행위. 나는 그것을 통해서 내가 보여줄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작업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나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번에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을 했다면, 다음에는 그 행위를 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보여 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무언가가 저질러졌으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정 행위가 반복된다는 것은 무언가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인지 그리고 그것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이다. 혹은, 이 전에 그린 순댓국 그림처럼 도피의 수단 혹은 치유, 마취에 대한 것에 대해 알아볼지도 모르겠다. 집중할만한 구체적인
물질이 있을 때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