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2월 1

추천했던 것

  이십대의 반을 소비할때까지도 글과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년전 부터서야 텍스트라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뒤적거린 사람으로서 추천이랍시고 책 제목들을 읊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 얄팍하고 시큼한 취향이 페친들의 책선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그리고 그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볍게 적어봅니다.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이것을 어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만난 것도 우연에 가까웠습니다. 어찌보면 첫사랑의 그것에 비견될 정도로 강렬한 체험이었습니다. 일상, 구속, 도피, 반복 등의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매우 좋습니다. 더 기괴하고 너절합니다. 최근의 제 작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이 작자의 단편들은 다 다른 내용이지만 관통하는 것이 있다고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낮은 쪽에서 높은 쪽을, 어두운 쪽에서 양지바른 쪽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들러붙은 여러가지 감정과 삶의 태도입니다. 저는 종종 지리멸렬한 것에서 평안을 얻습니다. 언젠가 마의 산에도 올라볼 생각입니다.

 한없이 투명한 블루, 무라카미 류 포르노, 그 중에서도 폭력적이고 거칠기로 유명한 서양의 것이 상상되는 위험한 글입니다. 저는 이것을 군대에서 접했고 주인공의 너덜너덜해진 신체와 정신이 스스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안도가 되었습니다. 하루키를 통해 니힐에 경도된 당시의 저였기에 진입장벽이 크게 높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욕구를 해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한 부대의 작전과 병사는 이 섹스와 마약이 난무하는 파괴적인 책의 속지에 대대장 검토승인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무진기행, 김승옥 그에게는 무진이 있듯이 제게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어떤 것이기도 하고 실제적인 공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발가벗겨진 채로 체취를 강하게 풍기며 지내는 본인만의 안식처라고 생각합니다.

 피로사회, 한병철 교수님들에게 직접적으로 알려드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최근 휴학을 결정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책입니다. (김형관쌤의 얼척없는 미소가 그려집니다.) 자의적인 중단이라는 것을 지금이 아니어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세간에 소위 힐링 류로 보는 비판이 있다지만 만약 깊숙한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다 기어올라오는 hilling도 포함한다면 넓은 의미에서의 힐링이라 하겠습니다.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윤난지엮음. 개인적인 지적탐구로 들여왔다가 부작용없는 수면제의 기능이 있는 것을 알고 그리 사용해왔습니다. 여름에 본 책으로 스터디를 진행한 후에야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 시각을 통해 전반적인 이해를 돕게 합니다. 도입부의 라깡 텍스트가 좌절스러우나 그것을 이겨내면 어슴푸레하게나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 보이기 사작합니다.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 앙리 베베르 제목부터 그러하듯이 균형을 가진 시각의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고 어떤 이가 말했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 됐든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폴리나, 바스티앙 비베스 이것은 문학이라고 보기엔 애매합니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로 불리던데 저는 그냥 그림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염소의 맛과 고민했는데 이것이 좀 더 오래곱씹을 수 있는 삶의 단편적인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주인공이 나이가 들어서 선생님의 얼굴이 다르게 묘사가 되기 시작하는 것은 꽤 긴 여운을 줍니다.

 Gunther Uecker, Dieter Honisch 귄터 웨커의 화집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러나 쓰여진 전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작가와 작품론 발표때의 악몽이 서려있는 책이라 마냥 즐겁게 볼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께선 그러한 해석을 거부하셨으나 저는 이사람이 아직도 컴플렉스, 내지는 트라우마에 의해 작동하는 예술을 하고 있다고 믿고있습니다. 생을 유지하기 위해 예술을 하는 것이라고 보여질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보이스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작품에 드러난 폭력성과 일상성(소재의 일상성 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일상적이라는 것이 더 인상적입니다.), 상흔들은 매우 압도적입니다.

 뭐없나, 마영신. 저는 언젠가 이런 만화를 그리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순수예술을 전공하고있지만 제 그리는 행위의 뿌리는 만화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아직도 그림보다 만화가 더 재미있습니다. 이 책은 정말 친한 학창시절친구가 들려주는 그때의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다시는 돌아가고싶지않은 처량한 과거같으면서도 가끔은 너무 그 향기가 그립습니다. 최근에는 남동공단이라고해서 군생활 이야기만 따로 엮어서 출판된 것이 있는데 날것의 재미는 좀 덜합니다.

 취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스스로가 구체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쓰며 완결하지못하고 던져 둔 책이 얼마나 많은지, 읽는다는 행위가 주는 안도감에 마침표 외엔 전혀 기억나지않는 책도 얼마나 많은지 더듬어보게 되었습니다. 손영규 남수빈 안광휘 장규돈 잠깐이나마 즐거운 시간을 만들 기회를 넘겨드립니다.

9월 즈음 새벽에 써서 올린 담벼락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