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 하다. 창수는 고등학교 동창인데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항상 좁고 깊게 사귀는 나의 성격덕분일 것이다. 꼼장어를 구우며 앞으로의 길에 대해 이야길 했다. 놈은 나를 부러워했다. 왜 하지않느냐고 물어보자 자긴 메세지가 없다고 했다. 미학과니 예술학도니 아는 사람들 수없이 만나봤지만 결국 필요한건 메세지인데 자기에겐 무엇을 드러내고싶은지가 모호하단다. 하지만 항상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놈에게 나는 경외감 비스무리한 것을 느꼈다. (준식이 집에 있는 포스터 칼라 그림을 보고 느꼈던 그것과 비슷하다.) 나의 키네틱아트 동력에 대해 물어보고 몇백만원하는거 아니면 지르라는 충고를 들었다.
수년만에 본 중학교 친구들은 다들 그대로였다. 얼마전 만난 준영이를 만났을 때의 그 이질감과는 반대의 것이었다. 만날 때마다 옛날 얘기를 안주삼아 껄껄대곤하는데, 재밌는건 항상 레파토리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쓸데없는데서 기억이 날카로워선지 놈들이 기억못하는 걸 난 다 기억하고 얘기를 하는데, 말하고보면 저번에 만났을때 했던 화제들이다. 누가 결혼을 했다더라, 누가 대기업에 취직했다더라, 학교에 알고보니 동창이 있더라... 먼지 쌓여 머리꼭대기 다락방에 있던 기억들을 간만에 잘 닦아주었다. 또 시간이 흐르면 만나 같이 그 기억들을 한장씩 넘겨볼 수 있을테지. 하지만 거기서 나는 조금 다른 곳을 보고있는 기분이다. 내가 다른 곳을 보는지, 이 놈들이 날 다르게 보는지. 어쩌면 나혼자 그리 생각하는 것인지. 무엇을 말해야하고 말할수 있는지에 대해 자꾸 생각을 하게된다. 편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아진다. 입에선 욕이 걸쭉하게 튀어나오는데 속으론 딴 생각을 하고있다. 나는 과거를 자꾸 돌아보면서도 거기에 발이 묶이지 않기위해 무진 애를 쓰는 듯하다. 왜 자꾸 부정하려 하는걸까? 왜 ?
-사진이 자꾸 누리끼리해진다. 밤에 만나 술자리에서 찍다보니 붉거나 어둡게 찍힌게 대부분이라 보정중에 누렇게 떠버리게되는 것이다. 이번엔 즐겁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있다보니 편의점앞에서 찍을 생각조차 못했다. 자연광에서 찍은 것보다 술집조명아래서 찍은 사진의 비율이 더 높아진다. 눈이 피로해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채도를 낮추자니 감성돋는 싸이 사진되버리는 것같다. 아 어렵다. 아예 사진을 새로 만드는 기분이다.
- 텍사스에서 사진하나가 날아왔다. 가장 친한사람한테 부탁해서 상대방의 사진을 얼굴에 가리고 찍을까 하다가 섭외하기 귀찮아서 그냥 부탁을 했는데, 꽤 괜찮은 사진을 보내왔다. 살아오며 만난 사람중에 윤리적으로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놈인데, 이걸로 보기엔 졸라 와일드해보인다. 텍사스의 모래바람은 천사도 거칠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