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인 하루였다. 비록 여권퀘스트는 징표를 받지못했지만. 어느 영화감독의 프로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실천해보고 싶었다. 훗날 '전 하루종일 극장에 쳐박혀 나올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왜냐구요? 그곳이 더 현실같기 때문이죠!' 라고 지껄이며 너스레를 떨만한. 하지만 요즈음은 교차상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커플들끼리 애정을 줄줄 흘리는 사이에서 혼자 자리를 잡긴 힘들었다. 더군다나 대구에선 가장 최근에 생긴 멀티플렉스에서 있는 것은 꽤나.
사실 장마에 홀딱 젖은 몸을 말릴 요량으로 스파이더맨을 imax로 호강하려했는데, 자동판매기옆에 미드나잇 인 파리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마음을 바꿨다. 둘 다 보지만 처음은 그걸로. 애니홀이고 부부일기고 받아놓고 안보고 있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명)씨의 블로그에 그런 글이 있었다. 아주 대놓고 긁어오자면
'그장면이 상상되시나요? 말쑥하게 양복을 갖춰입고, 까페에서 차를 마시며 몇시간이고 토론을 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장면이~
경청하러 온 젊은이에게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설명해주고
화가지망생은 자신의 스케치북을 가지고 까페에 가서 클림트에게 가능성이 있냐고 물어봐요.
저구석탱이에서는 슈니츨러가 새로운 작품을 쓰고있고
말러는 새로 작곡한 곡이라면서 까페 한가운데서 피아노를 치고있어요~
히틀러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서 트로즈키와 스탈린이 러시아혁명에 관해서 격렬히 토론하고 있어요.
↑ 이게 가능했던 곳이! 바로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까페였어요^^'
스타일리시한 드로잉을 하는 그 화가지망생은 아마도 쉴레이리라. 굉장히 설레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바라보기만 했던 그 인물들과 한 공간에 존재하며 수다를 떨 수 있다니. 그걸 만들어낸 게 미드나잇 인 파리였다. 오프닝까지는 파리에 대한 개인적인(혹은 일반적인) 선입견으로 클리셰가 아닌가 했는데 자연스레 그 경계를 풀게 되었다. 혹자는 타자가 보는 파리에 대한 것이라 설명을 하던데, 거기나온 폴처렴 현학적인 개소린 것 같다. 단지 꿈같은 자정을 작동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꼭 파리여야만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덕분에 신선한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허상뿐인 과거와 허상을 만들어낸 원인인 현실. 폴이 개소릴 많이 하지만 초반에 그 부분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사실 개소린 아니다. 그냥 까고싶은 캐릭터라)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도 재미있었다. 마리옹 꼬띠아르가 그렇게 매력적인지 몰랐었다. 인셉션까지만해도 강한 마스크의 유럽 출신 배우로만 인식되었었다. 로키가 그렇게 신사답게 나올지도.
- 어떤 아이덴티티가 있는 모임은 굉장히 매력이 있다. 그게 꼭 어떤 목적성이나 행동성을 가지지않더라도. 류승완, 김지운, 봉준호, 박찬욱이 모여 수다 떠는 '자랑과 험담' 모임이라는 것을 들었들 때 알 수 없는 멋을 느꼈다. 실상은 서로 돌아가며 열폭하는 것이라지만... 만 레이와 달리, 브뉴엘이 앉아있는데 간지라는 것이 터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방금까지 마크 로스코가 설명따위 필요없다는 독자적인 해석을 보면서 그럴듯한데? 싶었는데 이렇게 논리적이지도 재밌지도 않은 텍스트들을 길게 써놓으니 뭔가 싶기도하다. 설명. 글. 텍스트. 이게 다 뭐하는 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