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5월 20

감광

 최근에 충무로를 갈일이 자주 있어서 밤늦게, 아침일찍, 점심때, 여러시간에 걸쳐 방문하곤했다. 과제때문에 간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돈 몇푼털어 서울시의 인쇄산업에 적잖은 도움을 준 것으로 만족하고있다. 어쨌거나 밤늦게 특수인쇄를 하느라 여기저기 발품팔며 돌아다녔는데 개중에는 무간도나 중경삼림에나 나올법한 곰팡이로 지어진 빌딩들도 존재했다. 깨진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서 왠지모르게 피지도 않는 담배를 꺼내고 싶고, 퇴로를 확보하고 싶었다. 서울은 이상하게도 중심부(경험에 의하면 구체적으로는 중구)로 들어갈수록 낯설다. 그곳은 30년 정도 시간이 뒤틀린 것 같기도하고, 우리가 아닌 외부의 눈으로만 정확히 볼 수 있는 그런 장소 같다. 그중에서도 충무로는 정말로 낯설고 기괴한 동네다. 

 그곳이 아니라더라도 가끔 그런 이상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있다. '모던'한 것들. 서울고속버스터미널건물(매우 이상한 기분이든다.), 서울 지방법원건물(뉴스에서 비치는 모습은 왜곡된 시야각 탓인지 현대적인데 반해, 실제로는 이상하다.), 관악사(첫입사했을때 가보지않은 산 속 수련원같은 기분이 든다고 일기를 적은 적이 있다. 하루키소설 어딘가에서 본듯한 그런 스산한 감정이었다.), 오래된 관공서 건물 등이 있다. 어제는 판화실에서 밤을 새고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는데, 자욱한 안개와 숲덕분에 또 다시 그런 이상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만 오롯이 존재하고 시간과 공간이 밀려오는 아침과 함께 뒤로 후퇴해버렸다. 나는 가본적도 없는 과거의 어느 장소에 존재해있었다.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