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5월 28

만나라당 입당 소감문

머리가 조금 굵어졌을 무렵부터 내자신을 존나 쿨한 진보적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때부터 빨간 것에 관심이 많았다. 중도좌파. 얼마나 멋진 말인가? 무식하게 시뻘겋지도 않은 그 세련되고 날카로운 멋. 당시 근현대사를 배울때 여운형에게서 왜그리 매력을 느꼈는지 이제야 이해가되는 것 같다. 심지어 연세대보다 고려대를 좋아한다. (당교의 애미없는 등록금은 학교의 프롤레타리아적 이미지와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최근까지도 이어져왔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려 노력해왔다. 군복무시절 이야기는 냄새가 나서 다들 꺼려하지만 몸으로 느낀 가장 적절한 사례였다. 입대전부터 내마음속엔 '짬차면 민주적인 군대로 바꾸어야지'하는 바램이 있었다. 이건 쿨해보이고 자시고가 아니라 그것이 당연하고 필수적인 이행과정이라 생각해서였다. 왜 비인도적인 체제가 유지될까? 썩은 건 바꿔야지! 하는 고삐리시절 사고방식 그대로 입대를 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당시 장래희망이었던 병장이 되었다. 휴가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중엔 욕심도 생겨 상담관에 으뜸병사에 이런저런 감투도 썼다. 한 부대의 대표자, 소위 말하는 기득권층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내 모습은 예전의 나가 아니었다. 나는 내자신이 비난하던 그 체제를 유지하려 노력했고, 무너지지않게 안간힘을 썼다. 밑에서 치고올라오는 자들은 견제하고 위에서 누르는 자들의 압력은 흡수시켰다. 나는 말만 번지르르한 빨갱이였지 체제속에 던져져서는 보수정당의 대표가 된 것이다.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냐고 자문해보면 사실 구체적으로 답하긴 힘들다.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자는 일명 '차게바라'가 되었고, 그 여파로 권위있던 병장들이 내무실을 박살낸 것은 내가 오기전부터 전설이었다. 그 사회 속에서 바닥부터 왕까지의 2년을 경험한 후, 원래의 사회로 복귀했다.

  지금의 사회는 그 곳과는 많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기득권이 되고 그 진행도 매우 빠른 곳이었다. 실제로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그러한 기득권층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내가 빨간지 파란지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회의 큰 물살은 거스를 수 없다'는 학원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에 빠졌었다. 요즘은 어떤 뉴스를 봐도 마음이 일지 않는다. 칼날같던 나는 오래 전 일이다. 아까 전화통화로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내모습에 속물같다고 자책하고픈 마음도 일지않는다. 일어날일은 결국 일어나게 될테니까. 그게 언제가 되고 우리에게 어떻게 맞추느냐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말이다. 밤에 촛불을 켜면 온세상이 밝아지지는 않지만 멀리서도 보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켠 초에 사람들이 반응하느냐는 또다른 문제다. 세상엔 이미 형광등도 있고 전구도, 네온싸인도 있으니까. 구태여 촛불을 보려하진않을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이 양초하나 뿐이거나, 그 양초를 누군가에게 빼앗겨 화가 나고 상처를 받기전까지는

서제만 (노트) 2011년 7월 25일 월요일 오후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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