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7월 11

오전9:23

사설갤러리인데 꽤 크다고 들었다. 왠 오래된 역사를 사서 그곳에 좌판을 벌린게 그사람 갤러리라고도 하고. 방주형이 워낙 감정의 동요없이 얘기하셔서 나역시 그런가보다했다.(그런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그 곳엔 마치 로마ㅡ판테온 이상의 면적을 가진 건축물이 나를 짓누르려했다. 이곳저곳 퇴색된 프레스코화가 개인의 것이라고 믿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곳엔 올드바우라고 해서 오래된 집들이 존재한다. 자세힌 모르겠지만, 파리에서 얼핏 본 대로라면 100년 급 50년 급 30년 급 등 년수로 건축물의 급수를 따지는 듯 했다. 햇수와 가격이 비례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오래된 것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신기하고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니쉬 카푸어는 리움에서 접했을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리움에선 안료 작업이나 공간을 새로 만들어버리는 식으로 마감이 세련되고 깔끔한 것들이 많았다. 서도호의 전시를 봤을 때 처럼 웰메이드의 느낌이 강했다. 이곳엔 왁스작업과 최근의 조형작업, 그리고 실제로 보고싶었던 돌을 파내 어두운 공간을 만든 것들이 전체적인 큰 이미지를 차지하고있었다. 그것은 처절하고 상처입었으며 원시적이고 사색적이었다. 리움의 그것과는 대비되는 아름다움이었다. 이전의 곳은 명상적이고 고요하기만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곳에 더 마음이 간다.) 중앙 홀에서 이루어진 왁스-에스컬레이터 작업은 그 어떤 설치물보다 시각을 강하게 난도질해버린다. 거대한 고깃덩어리들 앞에서 설핏 곧 떨어져 내 육신이 거기 쳐박힐 것 같은 설렘같은 것이 들었다. 지나면서 핑크플로이드의 월 앨범을 듣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대단한 전시 공간이었다. 그리고 좋은 작업이었다.

+작년 미학수업때 아니시카푸어를 조사했던 적이 있었다. 간접적인 매체로 보았을 때, 거울작업은 순전히 유희적이고 순간적인 분위기 환기 정도를 넘어설 수 없을 거라 지레 짐작했었다.(물론 발표 페이퍼에는 명상,자기자신을 바라봄, 동양적 사고등을 써갈겼다.) 리움 데크에서 보았을때도 조금 이상하고 재밌긴하다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곳엔 거울보다 유닛들로 합쳐진 타워의 존재감이 너무 크기도했고. 그런데 이곳에서 본 거울오브제들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크진 않지만 왜곡이 심한 것들로 나와 공간이 마구 뒤틀렸다. 구멍 작업과 어떤 연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제 스스로 생명을 가진 나의 그림자와 대화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 방이 가장 직접적인 메세지로 다가왔다. 방금 '아 거울!'하고 생각났는데 잊어버릴 것 같아허 생각나는대로 써남긴다.

윗층에는 호스트 안테스라는 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아래서 브로슈어를 봤을 땐 촌스럽다 생각했는데, 초기 작업의 강한 색채를 보면서 눈을 크게 뜰 수 있었다. 아주 오래된 구도를 사용하지만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스스로를 쓰다듬 듯 그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예전에 지연이가 혼자 그리던 그림이 생각났다. 냄새가 비슷했다. 얘가 이걸 본 적이 있나 싶을정도로... 꼭 같이, 그리고 다시, 보러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데카의 룬트강은 결국 놓치게 되었다. 쾰른 리히터전시가 재미없다면 나는 평생 쾰른(이라 쓰고 관광도시라 읽는다.)을 싫어하게 될 것 같다. 맥주도 알트가 더 낫다. 역사로 먹고사는 촌놈들

+이곳의 룬트강 그러니까 과제전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도시 곳곳에 과제전 홍보포스터가 붙어있고, 시민들이 하나의 행사 처럼 많이들 찾아와 준다고 한다. 이미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전에 어떤 다큐에서 예술과 아무 관련없는 영국 노동자도 집에가서 티비로 터너시상식을 구경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설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그는 "누가 요즘 잘하는 예술가인지는 알고 싶다."라고 했는데, 실은 이바구하며 옥신각신 떠들기 좋아하는 그네들의 특성인지도. 각설하고, 이곳 사람들은 구매도 활발하단다. 작품의 가격이 그리 세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라도 한다. 이럴 때면 으레 정기용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인들은 좋은 건축을 본 적이 없다. 그게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