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0월 13

밤의 기록, 그리고 아르브뤼



밤을 그리려 노력 중이다. 약 한두시간 앉아서 드로잉을 했다. 처음에는 보이는대로 시커멓게 그렸는데, 보다보니 눈이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뭐가 더 보이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하지만 굉장한 존재감이었다. 항상 지나가는 곳이었는데 언젠가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무섭도록 거대한 어두움때문에 요샛말로 지릴 뻔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마치 괴물같기도 했고, 지난 봄에 그린 코야니스카치같기도 했다. 되도안한 기교를 빼고 그 어둠 속 존재에 집중해보려했다. 사진으로는 전혀 기록되지않지만 실재한다. 나는 그것을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다. 색깔까지 눈앞에서 섞어서 들어가려고했는데 도무지 색은 그 약한 빛아래에서 따라해내기가 힘들었다. 내 눈앞에 있는 것과 내 눈에 비치는 것 그리고 내 머릿 속에 들어와있는 것이 다 다르다. 한데 섞어야할지 녹여버려야할지 고민이다. 색의 선택에 있어 장애를 가진 내게 도움이 될 과정일 것이다. 구상으로의 복귀 또한 다시금 작업 동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밤과 내일 밤도 그곳에 있게 될 것같다. 호크니처럼 그 앞에서 보며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명이 있다면 해낼 수  있을까? 기억과 느낌만으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 방법이 더 효과적일까? 어떻게 만들어내고싶은지 좀 더 생각해보아야한다.




어제 계획이 뒤틀려 패닉에 가까웠는데, 갑자기 그림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보고 잔 리미츠 오브 컨트롤의 영향인가? 칼더는 본체 만체하고 상설관으로 향했다. (지연 덕분에 공짜표는 덤) 느낌이 오는 그림들이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씩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엥포르멜이나 추상표현쪽은 계속해서 팬임을 자처하고 쳐다보게되지만, 팝적이라 별로였던 일부 작업들을 좀 더 인내를 갖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리움에 이어  독일에서 제대로 실망했던 로스코는 같은 장소, 같은 작업인데 또 달라보였다.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예술에 구원이 있기에 나는 아직 무신론자를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적 가치(얼마나 진보적이냐에 관한 한)와 감상에서 오는 깊이는 별 상관이 없는 듯 하다. 반비례하는 것 같기도 하고...... . 

지연이 알려 준 재미있는 일화.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을 오면 꼭 장 뒤뷔페의 '아버지의 충고'그림 앞에 선다고 한다. 근처 아쉴 고르키나 윌렘 드 쿠닝의 물감으로 더럽혀진 캔버스보다는 친숙한 사람의 형체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의 예술관에 혼돈을 주지않으리라는 선생님의 생각때문일 것이다.(혹은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일지도) 어쨌건 그 앞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거 무슨 그림같아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빠가 잔소리하고 아들은 짜증내요."라고 한단다. 나는 사실 그렇게까지는 못봤다. 최근이지만 장 뒤뷔페의 그림이 좋다좋다하면서 그 자유로운 선과 거칠고 원시적인 형식에 집중했었지 그 그림 자체를 깊이 보고있지 않았다. 아이들 말을 듣고나니 정말로 그리보였다. 아니 어쩌면 듣기전부터도 자세히 보면 그리보였을 것이다. 이런 것을 우문현답이라 하나. 괜시리 그림을 보는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보면서 형식에 대해 집중하지않을 것이다. 나를 반으로 쪼갤 순 없지만 이럴 땐 분리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