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8월 27

방법

 내가 수강한 수업은 아니지만 전공교수가 한 말을 실기실 벽 너머로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작품을 대할 때 "왜 그렇게 했느냐?"대신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느냐?"로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타인의 사고에 따른 결과물에 생기는 최초의 거부감을 잠시동안 기절시킬 수 있다.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이미 '여기' 있는 작품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의 생명이 어떻게 탄생되고 유지되는지 최소한의 의지로 탐구하도록 허락한다. 물론 그 이상은 순전히 개인의 몫이나 그 문턱까지 데려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부정하는 일은 어려운 것처럼 들리나 의외로 왕왕 일어난다. 그것은 어떤 취향에 의해서 일어나기도 하고 특정한 논리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 전혀 물질적이지 않은 것이 눈앞의 물질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작품의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논문 발표가 그러하고, (과제, 졸업, 그리고 외부의 모든) 전시가 그러하며, 타인을 대할 때도 부정은 발생한다. 개인의 마음 속에서 대상을 부정한다고해서 실제 세계에서의 대상의 존재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단지 부정하는 주체의 사고체계가 왜곡될 뿐이다. "왜 나는 이런 역사들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왔고 지금 이런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부여잡고 있을 수 밖에 없는가?" 나는 그것을 나를 만들 때(work)도 들이대 본다. 부정을 긍정으로 옮기는 것보다는 현재의 존재를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생명에 대해 아는 것에 목적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