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월 13

여행의 뼈

 주의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오래전부터,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저 아이들의 온갖 비참한 모습들 속에서도 한 가지 사실을 감지했을 것이다. 곧 해방된 프롤레타리아의 자신감이 아이들의 저 자유분방한 태도와 호응한다는 사실이다. 모스크바의 박물관을 관람할 때 무엇보다 놀랍고 아름다운 모습은 단체로, 때론 가이드 한 명을 둘러싸고, 아니면 혼자서 아이들과 노동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그곳을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다. 우리의 박물관에서라면 다른 방문객들에게 감히 드러내지 못할 아니 아예 박물관에 들어올 수도 없는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절망적인 의기소침함을 여기선 결코 찾아볼 수 없다. 모스크바 일기, p283

 이 구멍 많은 돌이 건축물이다. 마당, 아케이드, 그리고 계단실 안에 이것들은 스며들어 있다. 나폴리 사람들은 모든 것들 속에 새롭고 우연한 별자리의 극장이 될 여지를 보존한다. 명확한 특징은 회피되고, 의도적으로 고정된 상태도 없으며, '다른 것이 아닌 이것'만을 주장하는 형상도 없다. 나폴리, p165-166


 기술 문명의 발달은 지식을 대중화하고 사람들의 감각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지만, 경험과모방으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이전 시대의 방식을 빼앗아가버렸다. 벤야민은 그러한 상태를 "지성의 인간다운 사용법"을 잃어버린 상태로 이해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보편화되기 시작한 이성중심주의, 모든 것을 체계화하고 분류하고 목록화하는 것으로 인간과 사물, 자연과 세계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실제로 인간이 갖고 있던 하나의 능력인 "예견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실패"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결국 현실에 눈감게 만드는 "사회의 우둔함"으로까지 나아갔다.
 '예견'은 인간의 신체가 자연(혹은 우주)과 가까웠던 시절에 경험과 모방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던 인간들이 지닌 능력이었다. 사람들은 그 능력을 통해 "도취의 상태에서 우주를 경험"했다. 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새로운 신체'를 조직할 수 있도록 했다면, 벤야민은 그것을 통제하는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적 신체를 조직함으로써만 자본-권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벤야민의 시대에 그 공동체적 신체의 이름은 '프롤레타리아트'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프롤레타리아의 힘은 그 신체가 회복되어가는 과정의 척도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규율이 그 신체의 뼛속까지 스며들지 않는 한 그 어떤 평화주의적 숙고도 그 신체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일방통행로, p164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권용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