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월 22

역싸



 벤야민이 프루스트에게서 배운 바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기억’을 펼쳐내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벤야민은 프루스트가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삶이 아니라 삶을 체험했던 사람이 바로 그 삶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삶을 기술”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곧 프루스트가 자신이 체험했던 내용이 아니라 그 “체험의 기억을 짜는 일, 다시 말해 회상하는 일”에 몰두했고, “기억이 씨줄이고 망각이 날줄이 되고 있는 무의지적 회상에 기대 글을 썼다는 의미이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불러내기 위해 이성과 의지의 작용이 필요하다면, 무의지적 기억 혹은 무의지적 회상은 그 반대이다. 그 때문에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무의지적 기억’이 오히려 망각에 가깝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밤이 짰던 것을 낮이 풀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게 되면 우리는 대부분 약하고 느슨한 몇몇의 조각 속에서 망각이 우리들 속에서 짰던 이미 체험한 삶의 양탄자를 갖게 된다. 그러나 낮이 시작되면 우리는 언제나 목적과 결부된 행동을 하게 되고 또 그 위에 목적에 맞게 기억을 하게 됨으로써 망각이 밤새 짰던 직물과 장식은 해체된다. -프루스트의 이미지, p103

 회상에 있어 콩브레는 마치 얇은 한 개의 계단으로 이어진 2층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콩브레에는 마치 저녁 7시 시각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묻는 이가 있다면, 콩브레에는 다른 것도 다른 시간도 있었다고 나는 대답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것은 단지 의지에 의한, 의지의 기억에 의해 회상되는 것이며, 그 기억이 주는 정보는 참된 과거를 무엇 하나 간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의지해 콩브레의 그 밖의 것을 생각하고 싶은 마음을 결코 갖지 않았으리라.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p64-65

저번에 그 책, 기억의 발견 : 프루스트로부터 중





 벤야민이 ‘깨어나는 것’, 즉 각성을 역사 서술의 핵심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는 억압과 불편으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삶을 향한, 각성한 인류의 활동으로 만들어져왔다는 생각이 그의 역사 인식에 핵심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란 한두명의 영웅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명령에 따라서 만들어져온 것이 아니라, 자신과 공동체가 처한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비마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축적물이 아니며, 그것을 통해 지금-여기에 펼쳐지는 삶의 진면목을 발견할 때 의미가 있다. 벤야민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 인간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잠에서 깨어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했는지 추적하고자 했다. 그에게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비상사태’가 상례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의 삶, 즉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하는 것으로서 혁명은 각성된 인간과 투쟁하는 피지배계급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역사를 바라보는 유의미한 틀로써 프루스트를 염두에 둔 것은 역사를 연속성의 관점에서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일반적인 역사가들의 방식에 반대하며, 역사를 통해 현재를 풍부하게 인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휙 지나간다. 과거는 인식 가능한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사라지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서만 붙잡을 수 있다.” 과거를 고정된 사실로 인식하고 시간의 연속 과정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이미지’로 인식한다는 것은 역사를 “구성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며, 이때 역사가 구성되는 장소는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Jetztzeit)으로 충만된 시간"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벤야민이 볼 때, 역사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축적된 과거의 사실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으로 지금-여기의 삶에 간섭하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그 ‘휙 지나가는 이미지’의 과거를 붙잡아 정지시키는 방법을 벤야민에게 알려주었다. 그것은 이지적 노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무의지적이고 우연한 사건과도 같이 불쑥 떠오르는 기억을 이미지의 형태로 아주 순간에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시간의 연속으로부터 탈락된 파편적 이미지를 통해 과거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저번에 그 책, 역사, 과거의 이미지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