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우리나라를 벗어나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한번은 국내최대의 여행사주관으로하는 투어로 가이드 없이는 타국의 땅을 밟지도 못했던 적이 있는가 하면, 한번은 배터지는 식사 한 끼에 천원이 될까말까하는 곳에서 그것조차 아끼자고 시장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기도 했었다. 어느 때는 현지인의 집을 통째로 빌려서 동네사람인 체를 해보기도 했다. 언급하지않은 또 어느 때를 제외하고선 나 스스로의 힘이 아니었다는 것이 그리 자랑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나의 경제적 미성숙함에 대해 얘기하고자 글을 써대는 것은 아니다.
WTO에서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현재 해외여행인구는 8억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 인구가 벌어내는 수익이 100이라고 잡는다고 하자. 그 중 80은 대기업으로 20은 관광지의 현지인에게 떨어진다고 한다. 80에는 40이 호텔 및 숙박, 20이 항공운항료, 20이 각종 여행사에 떨어지는 값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무생각없이 켠 tv에서 ebs 다큐프라임이 나왔다.
전역 후 처음 떠났던 여행인 2011년도 1월의 메콩강여행은 마치 공정여행에 흡사했다. 숙식과 거의 모든 활동이 현지베이스 사업체안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그 안에서도 빈부와 문명의 차이는 존재했다. 하지만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퍼나르기 바쁜 대기업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더 먼저는 하지않았던 것이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아직 무겁고 끈적한 자본이 침투하지않은 (혹은 할 필요가 없는) 국가였으므로. 태국이나 파리여행 때 알아봤던 숙소와 그리 차이가 없는데도 문명의 환차라고 할 만한 그 가격은 굉장히 저렴한 것이었다. 공정무역이라 하는 것에도 분명히 문제는 존재했다. 흐름을 거스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큰 것은 자연스레 더 커지고 작은 것은 그로인해 더 작아질 것이다. 공간은 유한하기때문에. 하지만 억지로라도 울타리를 쳐두어야할 부분은 있다. 왜 제도를 만들고 법을 제정하는가? 최소한의 울타리는 그것을 박제시켜서 외부에서 공급되는 영양으로만 유지된다고 한들,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지금 이 때,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박제화'를 순순히 거부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하던 시절까지 살던 그 쓰레트지붕의 집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어렴풋이 주인 집 형이 내 장난감을 뺏아간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집은 단지 기억속의 분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여행들도 기억속의 여행이 되어버린다면? 사진으로만 뒤쫓을 수 있는 그런 여행이 되어버린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왜 다른 곳을 떠도는지. 언젠가까지는 내가 결핍된 어떤 것들을 막막히 채우려 방황한다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현재는 그 상처들이 아물어 피가 질질 새지는 않으니 그 이유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제는 단순한 습관에서 설레임이 느끼게되고 단지 그 행위와 일탈이라는 돌발상황 자체가 쾌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게는 1100원으로 하루종일 행복했던 그 때가 가장 좋은 여행일 것이다. 자취방 수건걸이보다 더 녹이 슬어 갈색에 가까운 그 자전거는 수시간동안 나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길가에선 일본인처럼 생긴자가 dslr을 들고 아이를 찍고있었고 나는 인터넷에서 보던 감성사진들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구나 라고 생각하며 페달을 밟았다. 군인들이 막아서 배는 탈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 굽는 냄새를 맡았다. 돌아올 곳이 있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이것은 사치한 취미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발목은 콱 박혀있으니 자꾸 밖으로 나도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도 든다. 틀리지않았다. 정의를 내리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라 나는 또다시 모르겠다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꼴이다
+루앙프라방 시장뒷길에서 15000킵짜리 채식부페가 너무 먹고싶다. 그 음식들이라면 채식할 수 있겠다싶다. 아니 할 수 있다. 했다 나도
-공정머시기고 나발이고가 쓸데없는 일인 것 같은 것이, 언젠가 자본이 침투할 것이 뻔할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방비엥이 고즈넉하고 아름답고 상쾌하다한들, 언제 카오산로드꼴이 날지 모르는 것이다. 고등학교때부터 내머리에 바람을 넣었던 카오산로드는 실제로 가보니 외부와 격리된 이상한 공간이었다. 깊은 호가 파진 곰사와 같은 곳이다. 우리는 거기서 스타벅스를 마시고 하이네켄을 부으면서 태국을 느꼈다 말할 것이다. 내 제공권에서 벗어난 리장도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인공의 아름다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최소한의 울타리가 올라와 격리시킨 것이다. 본질은 방콕의 빽빽한 도시인데, 어찌하야 울타리 속 박제도시를 보고 본질을 느끼는 가? 실제와 시뮬라르크의 차이가 없는 이 시대에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하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너는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