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7월 29

오전 11:52

 이 금빛의 9월, 타인이 나에 대해 품고 있는 모든 환상을 털어내버린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구름이 저처럼 흐르는 것이라면 나는 대체 누구일까!

 내 육신에 기거하고 있는 정신은 그것의 주인보다 한결 위대한 사기꾼이다. 정신에 정면으로 마주치는 일을 나는 무엇보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어느 것이나 나 자신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개개의 사상이란 한결같이 낯선 데서 얻어 온 씨앗이 발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감동시킨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나는 생각할 능력이 없다. 그런가 하면 감동하지도 않았던 유의 사물들에  관해서나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생각을 한다. 또한 여전히 혼자서 아무런 목표도 없이, 이것저것 몇 가지 카테고리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존의 유희의 법칙을 좇아 유희로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마도 한번쯤은 그 규칙을 바꿔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희란 바뀌지않는다. 결코 변형될 수 없는 것이다.

 나, 온갖 무의식적인 반응과 단련된 의지로 이루어진 한 다발의 묶음인 나, 충동과 본능의 부스러기와 역사의 찌꺼기에 의해 길러지는 나, 한 발을 황야에 두고 다른 한 발로는 영원한 문명의 중심가를 밟고 있는 나. 도저히 관통할 수  없는 나, 각종 소재가 혼합되어 머리칼처럼 뒤엉켜 풀 수 없는, 그런데도 뒤통수의 일격으로 영원히 소멸되어버릴 수도 있는 나...... 왜 나는 이 한여름 내내 도취 속에서 파괴를 추구해왔던가? 아니면 도취 속에서 승화를 갈구해왔던가 - 그것도 나 자신이 하나의 버림받은 악기였음을, 벌써 오래 전에 누구인가 몇 개의 음을 튕겨본 적이 있을 뿐인 버림받은 악기였음을 스스로 외면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그 음을 어쩔 줄 몰라하며 변주하고, 분노에 떨며 나의 흔적을 지닌 한 가락의 음을 만들어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나의 흔적이라니! 흡사 스 무엇이든 간에 나의 흔적을 지니는 것이 무슨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번갯불은 계속 나무 사이를 투사하며 나무들을 쪼개었다. 광기가 인간에게 덮쳤고 인간을 내부에서 갈가리 토막내어버렸다. 메뚜기떼가 들판에 내려앉아 먹어치운 흔적을 남겨놓았다. 바닷물이 언덕꺼지 범람했고 들판을 흐르는 시내가 비탈을 침범했다. 지진이 그칠 줄을 몰랐다. 그것이 흔적이다. 유일한 흔적인 것이다!



잉게보르그 바흐만, '삼십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