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7월 3

오전8:02



하루종일 걷고 또 걸었다. 오전에 이 도시에서 해야할 것을 반이나 해버려서 이상한 볶음국수를 먹고 나니 무얼해야할지 계획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걸었었다. 저녁끼니를 채울만한 식당을 찾던 중에 쿤스트아카데미근처에  적당한 곳이 있을 것 같아 서성거렸다. 적당한 식당에 적당한 자리에 앉아 적당히 기다리자 적당한(?)서버가 왔다. 앉아서 멍하니 독일어로 된 메뉴를 쳐다보고 있자니 적당한 선택을 하긴 힘들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 뒤에서 날 불렀다 "헤이, 알 류 챠이니ㅡㅈ?" 해그리드같이생긴 인도사람이 날 쳐다본다. 한국사람 이라고 하자 남준팩아냐고 물어본다. 당연히 안대니까 자기 교수였다고한다.(어?) 나도 파인아트전공한다니까 "뭐하고있냐, 여기같이 앉지않고. "하고 면박을 준다. 그렇게 자리까지 옮기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인도인의 이름은 굴 라쉬, 아니 굴 라마니이고 수십년전에 이 학교를 졸업한 애니메이션 작가란다.  너무나도 싱기방기해서 이것저것물어봤다. 귄터 우엑케 아느냐?게르하르트 리히터 아느냐? 재스퍼존스 작업좋아한다. 백남준 선생수업은 어땠나? 귄터 우엑케와 재스퍼 존스는 둘다 좋아하는듯 했다. 귄터우엑케 역시 교수였는데 이젠 너무 늙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리히터는(발음을 맇시터로 교정해주었다. 인도사람이라 별로 믿음은 안갔지만... 파리에선 누군가 구르스키를 굻ㅎㅋ스키 로 교정해주었다.뭔가 상당히 프랑스적인 발음이다.) 학교에서 자주 보았으나 이야기는 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남준팩은 당시엔 유명하지않은 작가라는 얘기만 했다. "유 라잌 뒤셀도프, 허?" 라고만 물었는데 저학교 가고싶다고 고백해버렸다. 그리고 오늘 나 관광객인데 둘러봐도되냐고 그러니까 안된다고 뺀찌먹은 이야기까지했다. 그러니까 굴라쉬는 왜못가? 걍 들어가서 멘사(거기 식당이름인듯.. ㅎㅎ)에서 밥쳐먹고 최소 한두시간 앉아있으랬다. 12시부터 3시까진 아마 이용가능할거라고 내일당장 모자쓰고  게이트를 통과하란다. 한국학생들 붙잡고 이야기하고 아무나와 이야기를 하랬다.(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흔히 쓰는 이빨터는 제스쳐를 사용했다.)그러면서 다른 정보들을 알려준다. 예술가들이 자주 모이는 술집이라던가, 과사에 가면 교수카탈록이 있으니 보고 비슷한 작업하는 교수한테 연락을 하라던가..(ㄷㄷ) 그는 곧 가야했고 어쩌다보니 서로의 이메일과 블로그를 공유했다. 그는 자기작업을 유튜브나 비메오에 검색하면 나온다고했지만  나는 당장 전시용 블로그가 존재하지않았다. 한국어로 써있지만 일기와 작업이 있는 곳이라며 블로그 스팟을 알려주고,  snufa12텀블러는 나의 동료작업이 있는 곳이라고 적어주었다. (잘했냐 ㅋㅋㅋㅋ) 왜 작업만 올려둔 사이트를 만들지않았을까 엄청난 후회를 하던 차에, 그는 떠나야겠다며 일어났다. 내일 아침에 가능하면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를 던져준 뒤.... 오 이거 어떡하지..?? 그는 거리속으로 사라졌는데 뒷모습이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나는 지금 누구와 이야기한걸까하고 순간 현실감각이 무너졌다. 옆에 어떤 백인 남자가 독일어로 뭐라 묻길래 영어로 해달라니까 나랑 두사람 더 있는데 앉아도 되겠냐고 묻는다. 알았다며 자리를 구석으로 당겨앉으니 덩치큰 커플과 그 친구가 밀려와 나를 구석으로 밀어넣는다. 기분도 이상하고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싶어서 계산서를 달랬다. 하지만 이런 곳은 언제나 느긋하다. 이쪽 테이블에 맥주리필은 세번이나 해주러 온 후에야 내가 얘기한 걸 갖다주었다. 미친듯이 피곤해서 나는 숙소에 거의 들어오자마자 잤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동양인은 거리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동네에서, 그것도 학교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이상하긴했나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메뉴를 보고있느니 그는 자기의 옛날모습이 떠오른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기 오기전에 독일어를 할줄알았냐고 묻자, 한개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단지 조금의 영어만 하고 독어를 모른다고 하니, 너처럼 아무것도 몰랐는데 와서 했다며 "그들은 다 알아듣는다." 라고 해줬다. 나의 테러블한 영어실력을 말하는지 혹은 예술을 향한 진심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문제없다고 했었다. 그 역시 이방인이다. 영화 '클로저'를 보면 여주가 남주에게 "hello, stranger?"라고 묻는다. 영화끄트머리에서도 반복된다. '퍼펙트센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에바 그린은 이완 맥그리거에게 'hello,sailor.'로 시작해 말끝마다 세일러를 붙인다. 사람은 결국 그럴 수 밖에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아침을 먹으러간다. 오늘 멘사에 가볼까고민을하면서....



아침에 눈을 뜨니 새로 온 중국인이 "어제 엄청 일찍 잠들었더라?" 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