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0월 29

미워도 다시 한번



 어제 밤과 새벽이 아까울 정도로 오늘 하루가 어두웠다.  자기 전에도 그림이 생각났고 일어나자마자도 놓친 수업보다 멍청한 골목에서 막혀버린 그림에 너무 화가 났다. 심지어 폰에 찍힌 사진은 더욱 평면적으로 찍혀 pop해 보였다. 나 스스로를 잃은 것만 같아서  오전(정확히는 오후 3시쯤까지)까지 아무 생각도 안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멍청한 그림은 내 뒤에서 나를 계속 쿡쿡 찔러댔다. 머릿 속에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지가 아니라 어디서 본 그림들이 그냥 뒤죽 박죽으로 섞여있는 것이었다. 아까 페이스북에서 본 책에 대한 글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간 그림을 그리고 있던 것이 아니라,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터치와 마르쿠스 뤼페르츠의 색깔만 재현하고 있었다. 어중이 떠중이 식으로 어떻게든 섞으면 뭔가가 나올 줄 알았나보다.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도 틈틈이 집중해보았는데 잘 안되었다. 이미 '제한된 회화'의 의미는 날아가 버렸다.

 새벽 2시30분쯤 캔버스에 어떤 흔적이 드러났다. 그리고 파란색과 검은색 앞에서 다시 안정을 얻게 되었다. 칸딘스키는 파랑을 천국적이라 했고, 검정을 끝이라 했다. 어딘가 수긍이 가는  것 같아 마저 시험공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