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과 새벽이 아까울 정도로 오늘 하루가 어두웠다. 자기 전에도 그림이 생각났고 일어나자마자도 놓친 수업보다 멍청한 골목에서 막혀버린 그림에 너무 화가 났다. 심지어 폰에 찍힌 사진은 더욱 평면적으로 찍혀 pop해 보였다. 나 스스로를 잃은 것만 같아서 오전(정확히는 오후 3시쯤까지)까지 아무 생각도 안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멍청한 그림은 내 뒤에서 나를 계속 쿡쿡 찔러댔다. 머릿 속에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지가 아니라 어디서 본 그림들이 그냥 뒤죽 박죽으로 섞여있는 것이었다. 아까 페이스북에서 본 책에 대한 글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간 그림을 그리고 있던 것이 아니라,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터치와 마르쿠스 뤼페르츠의 색깔만 재현하고 있었다. 어중이 떠중이 식으로 어떻게든 섞으면 뭔가가 나올 줄 알았나보다.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도 틈틈이 집중해보았는데 잘 안되었다. 이미 '제한된 회화'의 의미는 날아가 버렸다.
새벽 2시30분쯤 캔버스에 어떤 흔적이 드러났다. 그리고 파란색과 검은색 앞에서 다시 안정을 얻게 되었다. 칸딘스키는 파랑을 천국적이라 했고, 검정을 끝이라 했다. 어딘가 수긍이 가는 것 같아 마저 시험공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