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월 17

오후 1시 헬스장 옆 스타벅스에서의 단상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


아르노 브레커의 각오


조셉토락의 전우애

나는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지만(찌질할 정도의 스토리를 가진 어느 축구팀에게서 또다른 나를 느낀다는 것이 더 적절하겠지만) 요즈음의 불편할 정도의 신체를 향한 열망은 종종 타인의 욕망이 내게 암덩이처럼 전이된 기분을 갖게 한다. (개인의 정체성에 공격을 받는 것은 매우 불쾌한 감정을 수반한다.) 물론 좋은 몸을 보면 멋스럽고 탐스러우나(섹스어필), 목적과 과정이 자연스럽지 아니함을 알기에 거북함은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나 또한 현재 헬스장을 다니고 있으나 궁극적 목적은 학기 중 퍼지는 것을 방지하는 기초체력을 쌓아두는 것에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뱃살을 보는 것이 그리 탐탁치는 않다. 어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슬픔과 스스로 신체에 대한 자괴일 것이다. 현재 나의 신체는 어디가서 웃통까면서 '이미지뿐인' 남성성을 드러내지도 못할 뿐 더러, 신체를 통해 내가 이미 가진 인상에 도움은 커녕 마이너스만 된다. (투박하고 딱딱한 얼굴 아래의 물렁한 몸뚱아리) 올림피아에 등장하는 운동선수들은 땀냄새와 할딱거림이 느껴질 정도로 힘과 운동성이 강조되어있다. 정치성을 빼놓고 보더라도 존재자체의 미같은 것이 있긴 하다. 아르노 브레커의 동상은 어떤가. 다비드 상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영화배우)의 우뚝 솟은 덩어리 속의 여린 가능성을 내포한다면, 각오 상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왕년 사진을 보는 듯 난데없이 더부룩하다. 내게서 '파쑈'는 그다지 진정성이 없는 단어다. 나는 학생운동도 쿠데타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일개 유사 니트족 이십대일 뿐이다. 그러나 네오파시즘의 가지 어딘가에 걸린 열매라는 의심을 지울 수는 없다. 특정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생겨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그런 식으로 무언가가 생겨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열매가 특정 누군가들(아마도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울타리 칠 수 있는 단체, 공동체, 혹은 그에 상응하는 복수형)에게 따인다면 그것은 '파쑈'가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수도권과 지방권에서도 '파쑈'를 느끼고, 선생과 학생에게서도 '파쑈'를 느낀다. 신체의 권력은 해묵은 이슈이나, 다시 잊는다면 아예 세상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근거없는 욕망에 대한 복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