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1월 2

오전2시2분

우리는 언제나 넓게 보도록 강요받는다.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것이 미덕이고 그것을 통해 앞으로를 내다보고 현재를 미래에 맞추어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 배운다. 혹여나 보통은 신경쓰지 않을 나무 한 그루의 질감이나 그 위를 훑어 대는 벌레들을 보는 것은 정상이 아니거나 어리석은 것으로까지 여겨진다. 현재를 인식하는 행위가 왜 바보같은 짓일까? 한편 숲을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나아가 구조를 파악하고 이것을 도식화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것들의 생명은 사라지고야 마는 것이다. 생니 마냥 뿌리 뽑힌 나목들은 그저 땅에 누워있을 뿐이다. 어리석은 자는 누운 나무를 만진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자 세상 그 자체이다. 똑똑한 자도 누운 나무를 본다. 그러나 이미 진리를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샜을 그들에게 그것은 유기물 덩어리에 불과할 지 모른다. 구조와 개념의 불길에 질식해 죽을 것만 같다. 태울 것이 없으면 마지막으로 자신을 태울 것인가? 그래도 권위는 사리처럼 남아 영롱한 빛깔을 품을까? 물길이 어디서 갑자기 솟구쳐 흐름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당신들이 알려주었다. 나의 땅. 이 땅에 스며있는 개인의 역사를 경작해 무엇인가가 될 것이다. 나는 믿는다. 아직 무엇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것이 더욱 내게 채찍질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