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1월 5

유소유

요즘에는 무언가를 온전히 소유하기가 굉장히 힘이 든다. 내가 겪은 과거 그 이전, 선사시대까지 놓고 본다면 무엇이 인간에게 더 익숙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많은 것들을 빌리는 것에 의존하게 된다. 실제적으로 내 신체가 부대끼며 체취를 묻혀가며 사용하는 것들의 대부분도 실은 빌린 것들이다. 고유의 것이라는 개념은 몇몇 프랑스인들의 생각처럼 허물어지고 있다. 마치 그것은 미신으로 치부되어 다락방에 숨겨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럴 때면 할아버지 댁 광에 걸린 양파들이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먹을 양식을 비축해두고 계신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때만 되면 나눠주신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자랐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마트에서 일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가져가는 것에 익숙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웬만한 것은 직접 만들고 키워서 쓰신다. 음... 할아버지 댁 광에서는 식혜도 나온다. 어릴 적 나는 광에 무슨 우물같은 게 있어서 퍼도 퍼도 계속 나오는 줄 알았다. 어둡고 컴컴한 광. 지금도 내가 본 것만 해도 쌀이 있고 양파가 있고 마늘이 있고 고추가 있고 콩잎이 있고 깻잎이 있고 정구지가 있고 배가 있고 파김치가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해초나물들이 있고 참새가 있고 고양이가 있고 낫이 있고 호미가 있고 기름이 있고 광주리가 있고 구르마가 있고 시원하지만 습한 냄새가 있고 식혜가 있다. 식혜를, 아니 감주가 먹고 싶다. 이게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뭐라고 했더라. 그것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고유의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슨 발명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난 것을 수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것을 만든 것이고... 나는 그것을 함부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내 기억, 그러니까 감정적이거나 개인적인것을 질척해서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단어로 바꾸자면 나의 역사에서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채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난(born)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가 훔쳐가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불안정하지 않다. 그들이 먼저 내놓지않는 이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문도 안잠그고 잔다. 요새는 그런 촌동네를 노리는 좀도둑들도 종종 있다지만 그러한 걱정은 애초부터 없던 삶이다. 음...감주가 먹고 싶다. 솔직히 감주에 있는 밥풀떼기의 질감은 먼지나 걸레의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고 싫은 게 아니라 그런 특징적인 질감이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물을 너무 일찍 후루룩 마셔 버리면 그 밥풀떼기들은 정말 숟가락으로 퍼먹기 싫다. 그래도 먹고 싶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