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1월 14

평범한 글

을 써보려 했는데 쉽지가 않다. 갑자기 페이스북을 잘 그만뒀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쉬운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며, 그 결과물이 매우 어줍잖은 것이 될 게 뻔한 것을 알기 때문에. 물론 여기서는 피드백도 거부하고 있고 체크도 할 수 없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지금은 개똥철학으로 빠지고 싶지않으니 단순한 일상만을 이야기하려 한다.

 사용하던 아이폰5의 시계가 고장났다. 디지털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심지어 인터스텔라를 보고난 후 부터 시간이 왜곡되어있었다. 비슷한 케이스를 확인해보려고 검색도 해보고 클리앙같은데도 뒤벼봤지만 우습게도 답은 세리에매니아에서 얻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온 신입사원의 톤을 가진 애플 서비스센터 직원은 목소리로나마 매우 친절하게 나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계속 왜곡된 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미국출신 댄디남은 허탈하게 웃었고 결국 나는 리퍼를 생각하고 이튿날 서비스센터를 직접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서는 어릴 적 울산 삼촌이 생각나는 친근한 사투리 톤이 진득하게 묻은 남자 직원이 나를 대했다. 다행히 폰 보험이 가입되어 있어 적당한 가격으로 리퍼가 가능했으나 그는 고객과실로 고장난 것으로 보고하는 것을 전제했다. 기계 자체 결함인 경우 보험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나는 떨어뜨리지도 않은 폰을 떨어뜨려 고장이 난 것으로 만들었다. 그 녀석은 이제 본사로 보내져 리퍼 승낙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나는 직원이 알려주는 건넛방으로 가서 아이폰4를 임대받았다. 일주일 정도 쓰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간만에 질감이 느껴지는 인터페이스를 경험했다. 3gs를 반년 정도 쓴 경험이 있어 익숙했다. 조금 버벅거리는 듯 했으나 os를 업데이트하자 내가 쓰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냥 그대로 사용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리퍼비 10만원이면 4나 4s를 새로 사는 것과 차이가 없다. 소모품에 불과한 디지털 기기를 굳이 예전 것으로 살 필요는 없었다. 물론 아날로그적인 작동을 하는 기기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보통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구글 레퍼런스 폰을 사용했었다. 처음엔 뭘 알고 산 것이 아니나 나중엔 구질구질한 통신사 마크나 천박하리만치 귀여운 몇 아이콘들이 싫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써본 넥서스원은 이런 저런 애착이 있었으나 당시에 불안정한 심리상태 탓에 고시텔 벽에 강속구로 던져 꽂아버렸다. 액정이 들려버린 그것을 주워다 반으로 꺾고 완파시켰다. 그땐 그걸로도 모자랐다. 이런 얘길 친구한테 하자 녀석의 형이 '비쌀수록 던지는 맛이 있지.'라며 뭘 많이 부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뒷골 서늘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쨌거나 그 조악한 대만제 스마트폰은 광견병이 걸린 개에게 물어뜯겨 죽었다. 그 뒤로 잠시 몇만원짜리 피쳐폰을 쓰다가 다시 한번 레퍼런스 폰을 사용했다. 그땐 조금 더 만족스럽게 사용했으나 오래쓰면 너덜너덜해지는 윈도우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3gs를 얻어 쓰게 되었다. 디지털기기에 연식은 꽤나 취약한 부분인데도 잔고장 없이 잘 썼다. 반응이 조금 느리고 카메라에 화질구지가 살고 있는 것을 뺀다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굉장히 견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사용하는 4도 그렇다. 카메라도 이정도면 3gs에 비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자주 떨어뜨릴 것이다. 떨어뜨리고 거기다 재수없게 발에 부딪혀 더 멀리 날아갈 것이고 그것을 또 누군가가 걸어가다가 차버려 더욱 더 멀리 바닥에 긁히며 날아가게 될 것이다. 카메라는 사용하며 잘 떨어뜨리지 않는다. 쓸데없이 꺼내서 쳐다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한번 보면 머리 속에 다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물건은 요망한 것이 찰나의 무료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걸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지만 그만큼 배터리는 빨리 닳게 될 것이고 그만큼 삶은 더 초조해진다. 마치 우측상단에 떠있는 배터리처럼. 하루살이 인생같은 것이다. 종종 그런 상상을 한다. 영생을 가지게 된다면, 아니 지금보다 2배정도만 되어도 삶은 굉장한 변화가 올 것이다. 순간은 지금보다 더 긴 시간이 순간이 될 것이다. 공간에 대한 개념도 더욱 넓어질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더욱 넓게 인식한다. 기회주의적인 알량한 건축부터 사라질 것을 기대해본다. 종종 보이는 플라스틱재질의 고층 오피스텔 건물은 레고로 지은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낫다. 지금보다 더욱 순간을 느끼고 만지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의 수명이 점점 길어진 것에 비해 역사가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개인의 차도 있고 국가나 환경의 차이도 있겠지만... 오래 산다고 해서 꼭 정신마저 완숙해지란 법은 없다. 시간을 무시한 채 도망가듯 살아가는 것의 결과물들을 보며 숙연해진다. 이 견고한 정신을 가진 아이폰4는 내 안에서 얼마나 온전하게 지낼 수 있을까? 그것의 답을 얻을 수 없도록 그들은 며칠 후 내게서 다시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신형의 것을 내게 줄 것이다. 많이 사용하면 빨리 닳는다. 마치 내가 가진 청바지들의 가랑이처럼 새파래질 것이다. 면바지는 1년 전에 벗어놓은 주름 그대로 간직할 테고...

 생각나는대로 지껄여보았다. 아무생각없이 낙서하듯이 여기는 빽빽해졌다. 아무생각없이 그린 그림은 말만 잘 꾸미면 흰 벽에도 걸 수 있고 누군가에게 소개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경외를 느낄 것이고 몇몇 사람들은 속물의 냄새에 몸서리를 칠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글에서 진실과 거짓을 어렵지 않게 구분해낼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범주 안에서는 쉽지 않다. 완벽한 사기도 존재한다. 사기를 십 수년간 쳐본다면 그것인 사실이 되며 실재하게 된다. 더 이상 사기가 아니다. 없지만 있다고 계속 말하면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좋으면서도 싫다. 그래서 예술도 좋으면서도 싫다. 내가 말하려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반갑고 힘이 될 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게는 개똥같은 소리다. 한달 전 경영학, 스포츠심리학,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술이 들어간 김에 뭉뚱그려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에 대해 갈피를 잡아줬다. 경영학도는 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뭘 또 강조하고 그러냐고 말했고, 스포츠심리학도는 그냥 끄덕거리기만 했고 상담심리학도는 말로 할 수 있으면 왜 그림으로 그리냐고 했다던 내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경영학도(공교롭게도 수년 전에 나의 예술관에 대해 비스무리하지만 조금 더 거칠게 다른 경영학도 친구에게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그 녀석은 대안을 원했다. 바로 대입할 수 있는 또다른 공식)는 평소에도 예술에 관심이 많고 그림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지만 나머지 심리학도들은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애매함을 느끼지만 이것은 취향이라거나 성격의 얄팍한 문제가 아닌 것을 느꼈다. 동굴이 넓어지고 많은 것을 갖추게 되면 더 이상 동굴이 아니게 된다. 동굴은 태생적으로 좁고 깊을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그곳을 원하게 된다. 깊이 파게되면 다른 이의 것과 맞닿게 될 것이다. 입구가 넓어 남이 다녀가 해진 동굴 입구가 무엇이 매력이 있어 들어가고 싶겠는가. 이 시대에는 천박함이 세련됨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천박하지 않은 것이 우스운 지점이다. 그래서 나도 샌님이 아닌 척 노력한다. 일랑거릴만치 가벼운 자는 깊어보리려 애를 쓰고 악취가 날 정도로 깊이 곪은 자는 평탄한 척 애를 쓰며 현재의 울타리가 너무 좁아 가슴이 답답한 자는 전지구를 떠도는 영혼이 되려 애를 쓴다. 고달픈 자들의 끙끙 앓는 소리는 쉽게 숨길 수 없다. 앞서한 동굴의 비유가 다소 음란하지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 원래 이 글을 쓰려고 했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아이폰이나 맥에 내장된 기본 배경화면(혹은 아이콘)인 지구는 실제로는 미대륙이 중앙에 위치한 중화사상이나 다름없는 자만에 불과했다. 이것은 꽤나 효과적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전지구를 신경쓰는 듯한 혹은 우주에서의 시선, 그러니까 그 이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오버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시선의 인식 정도는 수업 크리틱 때 내가 충분히 지껄일 수 있는 부분이다.) 마치 fc 바르셀로나 축구팀이 유니세프를 유니폼에 마킹한 것과 다르지 않다. 붓 터치 하나 넣은 것으로 적당히 xx하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지를 해석하는 방법도 충분히 노력하면 갖을 수 있다. 진중권이 괜히 똑같은 얘기 계속 책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미학자들은 다른 철학에 우선해서 미학을 한다는 것 자체에서 다소 의미를 찾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한 이야기들은 평소에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하는 이야기 전개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 들어온 것을 여과시켜 모아 둔 것을 종종 그런 시간에 방류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엔 그런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정말 별 생각 없이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