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1월 19

이율배반이 없다면 개념의 유동성도, 기호의 유동성도 존재하지않고 개념과 기호의 연결은 자동화되기 때문이다.

데 스테일의 원칙

 요소화 elementarization는 각 작품을 분석해서 구성요소를 밝혀내고 이를 더 이상은 환원불가능한 기본 요소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통합 integration은 환원불가능한 기본 요소를 철저히 연계해서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통시적 전체, 그리고 모든 요소가 균등한 전체로 만드는 것이다. 두번째 작업과정인 통합은 구조적 원칙에 기본을 두고 있다. (언어의 음소처럼 시각 요소는 각각의 차이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이 구조 원칙은 모든 요소를 총체적으로 합치는 것이다. 즉 각 요소는 평등하며 반드시 서로 통합돼야 한다. 이 원칙에 따라 요소를 연계하면 군더더기는 없지만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 일반 원칙은 데 스테일 미술가들이 "회화,건축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존재론적 탐구들에서 벗어나, 작품과 그 작품의 맥락을 구분해주는 것에 관한 경계 설정의 문제로 이동하는 도화선이 됐다.

 문제의식이 이동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모든 미술 작업 형식에 공통된 구성 요소인 한계조건(틀, 경계, 가장자리, 받침대)은 요소화되는 동시에 통합돼야 한다. 그러나 한계조건을 통합한다고 해도 (한계조건으로 인해 분리된) 내부와 외부가 공통분모를 갖지 않는다면, 즉 외부 그 자체를 내부와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면 통합은 불완전한 상태로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데 스테일이 추구한 환경적 유토피아가 오늘날에는 순진한 발상같아 보여도 당시에는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꿈이 아니라 데 스테일 운동의 일반 원칙에서 나온 필연적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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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학자 롤랑 바르트는 "코드없는 메시지"가 되는 조건이 바로 사진의 기본 특징이라고 지적하면서 사진 기호를 그림이나 지도, 단어 등의 다른 유형의 기호와 대조했다. 단어는 나름의 문법규칙과 어휘목록으로 체계화된 언어에 근거하므로 상당히 코드화된 기호에 속하며, 의미형성은 바로 그 체계 내에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기호로서의 단어는 그림처럼 그것의 지시 대상과 닮은 꼴도 아니고, 발자국처럼 대상으로부터 직접 기인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호와 의미의 관계는 자의적이고 관습적이다. 기호학자들은 이런 성격의 기호를 상징이라고 한다.

 한편 그림은 도상이라고 불린다. 그림은 관습이 아니라 유사성을 기준으로 그 지시대상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또한 구성되거나 조작되면서 코드화된 의미와 결합될 수 있다. 국가색이나 '최후의 만찬'임을 인식 가능하게 하는 특수한 자리배치가 그 일례다.

 그리고 마지막 기호 유형인 지표는 전적으로 코드화에 저항한다. 왜냐하면 지표는 스스로 재조직되거나 재배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지표는 그 지시대상에서 비롯되므로 지표와 지시대상의 결합은 레고블럭처럼 쌍을 이룬다. 풍향에 의해 결정된 풍차의 방향, 미생물에 의해 유발된 신체의 미열, 차가운 유리잔이 탁자 위에 남긴 자국, 썰물이 모래사장에 남긴 패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코드 없는 메시지인 사진은 아무리 지시대상과 유사하다 할지라도 (혹은 그 지시대상의 도상이 된다 할지라도) 발자국이나 신체의 증상과 같은 부류에 속하며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는 구분된다. 기호학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사진이 광화학적 반응을 통해 생성된 자취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진은 감광매체에 노출된 대상의 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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