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1월 25

블로그스팟의 단점

 말로가 보기에 미술책의 가치는 기존 엘리트주의적 미술관보다 광범위하게, 그리고 훨씬 많은 이들에게 예술을 경험하게 하여 예술을 민주화시켰다는 데 있었다. 물론 '초고속 정보'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가치는 웹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가치가 미술책의 주된 기능은 아니다. 미술책의 주된 기능은 예술 작품들을 사진으로 복제해서 열거한 결과 예술 작품이 '대상'에서 '의미들'로 새롭게 기호화됐다는 사실에 있다. 말로의 언급처럼 작품은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의미(significance)인 양식을 획득한다." 이런 측면에서 미술책은 기호 작용과 연관된 기계이며 사진은 그 수단이 된다. 왜냐하면 사진은 가장 용이한 방식으로 비교를 가능하게 하며, 작품 간에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를 변별하는 경험을 분리하여 한 작품에만 한정된 관조의 경험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입증한 것처럼 한 작품의 의미는 그것이 아닌 것과의 관계를 통해 발생한다.
 예술을 다수의 의미가 중첩된 방대한 기호 체계로 보는 이런 시각은 말로가 가장 초기에 쓴 글 중 하나인 1922년의 전시 서문에서 발견된다. 이 글에서 말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비교를 통해서만 감지할 수 있다. 「앙드로마크(Andromaque)」나 「페드르(Phedre)」를 아는 사람은 라신의 다른 비극 전부를 읽는 것보다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이 프랑스의 천재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조각의 위대함을 이해하려면 수백의 그리스 조각들을 보느니 차라리 그것을 이집트나 아시아의 조각과 비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당시 20세였던 말로가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적인,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기호학적인 미학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은 아니다. 화상 다니엘-헨리 칸바일러 아래에서 일하면서 말로가 체득한 것은 바로 독일 미술사와 입체주의 미학으로 설명되던 시각예술의 경험이었다. 다시 말해 말로는 이런 경험을 통해 형태를 아름다움의 측면에서 파악하기보다 오히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파악하는 방법을 습득했던 것이다. 서구의 미적 취향을 전적으로 실현했던 고전 미술의 아름다움은 미술을 제작하거나 경험하는 데 있어 하나의 이상으로 작용해 왔다. 19세기 후반 스위스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은 고전주의는 오로지 바로크 미술과 대조될 수 있는 비교 체계를 통해서만 '읽힐'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이런 절대적 기준을 상대화시켰다. 그런 비교 독해를 위해 뵐플린은 촉각과 시각, 평면과 삼차원적 깊이, 그리고 폐쇄된 형태와 개방된 형태등과 같은 일련의 형식적 대립 쌍을 구축함으로써 형태를 언어학적인 기호로 전환했다. 형태는 더 이상 그 자체로서 가치 있기보다 오히려 체계 내에서 다른 형태들과 대조되면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 어떤 대상을 미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의미의 문제가 된다.



문장간 간격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고 폰트를 잘못 건드리면 html이 꼬여서 지저분해진다.  되새김질을 하기위해 기록하는 곳인데 너무 소화가 되지않은 상태로 기록이 된다.